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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공자가어(句解孔子家語)상 1책 요약정보 및 구매

구해공자가어(句解孔子家語)상 1책(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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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공자가어(句解孔子家語)상 1책(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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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공자가어(句解孔子家語)상 1책낙질 완질은 상,하 2책임 상태아주좋으며 파장없음 *크기:28*18.7센치 **내용 *≪孔子家語≫를 각 장마다 標題해서 句解한 것이다. 註者는 元代의 王廣謀라고 하나, 원 연대 및 우리나라에서 출관된 연대는 알 수 없다. 木板本으로서 上·中·下 3권을 2책으로 분철한 것이다. 내용은 상권;{1}相魯 {2}始誅 {3}王言解 {4}大婚解 {5}儒行解 {6}問禮 {7}五儀解 {8}致思 {9}三恕 {10}好生 {11}觀周 {12}弟子行 {13}賢君 {14}辯政 , 중권;{15}六本 {16}辯物 {17}哀公問 {18}顔回 {19}子路 {20}在厄 {21}入官 {22}困誓 {23}五帝德 {24}五帝 {25}執비 {26}本命解 {27}論禮 {28}觀鄕射 {29}郊問 {30}五刑解 {31}刑政. 하권;{32}禮運 {35}冠頌解 {34}廟制解 {35}辯樂解 {36}問玉 {37}屈節解 {38 }弟子解 {39}本姓解 {40}終記 {41}正論 {43}子貢 {43}子夏 公西赤이다. 첨부된 後序에 의하면 \"孔子家語란 것은 당시의 공경, 사대부, 72 제자들과 상대해서 문답한 것이니 그것을 여러 제자가 각각 자신의 물은 바를 기록한 것이다. 제자들이 그중 正實해서 切事한 것만 취해서는 ≪論語≫를 만들고 그 외의 것은 모두 集錄해서 ≪孔子家語≫라 고 題名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논한 내용중 正實한 것은 공자의 본 뜻이나, 생생히 浮說이 煩雜한 것은 제자가 각기 서술하는데 윤색이 있기 때문에 종종 浮說이 번잡해 지고孔子 서거후 또 72제자가 다 죽은 뒤에는 大義가 혼란하게 되있다. 그래서 \"6국 시대에는 儒道가 분산하여 策士들이 각기 巧辯만 하였는데 오직 孟子와 荀子 만이 그 의 배운 바를 지켰다. 秦昭王이 荀子에게 儒術을 물으니 그는 孔子와 72자의 言行 백 여편을 주어서 秦나라까지는 다 전하였고, 始皇때 李斯가 焚書하는 때도 ≪孔子家語≫ 는 諸子와 같이 취급했기때문에 그의 禍害를 免했던 것이다. 그런데 漢 高祖가 秦을 격멸하고서 서적을 찾아내어 漢室의 전권을 가진 呂氏가 갖다 두있다가 被誅되니, ≪ 孔子家語≫가 민간에 산재하게 되어 호사자들은 각기 제마음대로 증감했기 때문에 一 事에 異辭가 있게 되었다. 그후, 孝 景帝 末年에 천하의 禮書를 수집하니 그때 京師의 사대부에게서 呂氏가 가졌던 ≪孔子家語≫가 나왔는데 錯簡이 되어 알 수가 없으므로 掌書官에서 주어 秘府에 藏置하였다. 漢武帝元封年間(BC 101∼105)에 내가 京師에서 벼슬 할 때 선인의 전적이 장차 민멸될까 걱정해서 여러 공경대부들로부터 널리 구하 여 모두 입수해 가지고 事類대로 편차해서 44편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으로부터, 이 책의 편찬과정과 異本에 대한 사항을 알려주고 있다. 작자의 연대에 관해서는 文中에 \"安國의 孫인 衍이 박사가 되어 上書해서 辯하여 曰\"이란 구절이 있으나, 孔衍의 연대 가 확설치 않다. 그런데 唐代 顔師古가 ≪漢書藝文志≫ 「孔子家語 二十七卷」의 條에 서 \"지금의 家語는 僞作이다\"라고 하여 당시의 王肅이 注한 家語는 僞作이라고 의심한 데서 시발하여, 宋代 王栢은 ≪家語考≫를 지어 王肅의 僞作이란 것을 주창하였으니 그의 大意는 \"44편의 家語는 王肅이 左傳 國語 孟子 荀子 大戴禮 禮記등에서 孔子에 관한 기사를 모아서 類綴하고 또한 孔衍(孔安國의 孫)의 後序도 자작해서 그 家語를 孔安國이 集錄한 것이라고 해서 그의 유래를 확실하게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 후의 학자들이 이책을 僞書로 단정하는 자가 있게 된 것이다. 서기 200年代 의 魏人인 王肅은 18세때 太玄經을 보고 注解를 하고 자란 후에는 尙書 毛詩 論語 三 禮 左傳 易傳 등도 주해해서 모두 學官에 列하였다. ≪聖證論≫ 12권을 지어서 조정의 典制郊祀 종묘등에 관해서 공자의 말씀에 의탁하여 鄭玄의 說을 반박, 鄭王 二派와의 論爭이 전개되었다. 鄭玄의 六天說에 대해서 王肅은 一天說을 주창하고, 또한 鄭玄의 感生帝說을 王肅이 부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수다한 反論이 있었다. 이런 배 경에서 살펴볼 때, 王肅이 鄭玄과의 반론을 위해서 孔子를 假托하였으니, ≪孔子家語 ≫도 위작했다고 할 혐의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眞假를 문제로 해서 이책의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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