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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1층18상1
**序: 歲甲戌(1894)...柳厚祚 ; 李彙載
跋: 甲戌(1894)...南皐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남기만(南基萬)[1730~1796]은 1774년(영조 50)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내며 정조에게 시폐를 구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남기만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백온(伯溫), 호는 묵산(默山)이다. 아버지는 남국규(南國珪), 어머니는 이정일(李廷一)의 딸 진성이씨(眞城李氏), 할아버지는 남필명(南弼明), 증조할아버지는 남중혁(南仲赫)이며, 부인은 호군(護軍)을 지낸 이우강(李宇鋼)의 딸 재령이씨(載寧李氏)이다.남기만은 1730년(영조 6)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거묵리(居黙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에서 태어났다. 남제명(南濟明)·남국주(南國柱)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764년 집 북쪽에 묵산재(默山齋)를 짓고 소요하였다. 1774년 열린 증광 진사시와 문과에 모두 급제하였다. 가주서(假注書)로 관직을 시작하였으며, 1782년(정조 6) 장릉별검(莊陵別檢), 1786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1788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차례로 임명되었다.1795년 정조는 경학에 밝은 인재를 발탁하라고 지시하였는데, 영남에서는 이만운(李萬運)과 더불어 남기만이 초치(招致)되었다. 1796년 사간원정언에 올라 정조에게 여러 차례 시폐를 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 무렵 사간(司諫) 오정원(吳鼎源)이 상소를 올려 영남 지역에도 천주교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이에 남기만은 곧바로 상소를 올려 천주교를 배척하면서도, 오정원의 주장은 근거 없는 말이라고 반박하였다. 하지만 상소문에 과격한 언사가 있어 장령(掌令) 이태현(李泰賢)의 탄핵을 받고 얼마 후 사망하였다. 정조가 이 소식을 듣고 부의(賻儀)를 내려주었다.4권 2책의 『묵산집(默山集)』이 전한다. 권2의 소(疏)에는 「진시폐면군덕잉사걸귀소(陳時弊勉君德仍辭乞歸疏)」를 포함해 4편의 상소문과 정조의 하유(下諭) 및 전교(傳敎)가 수록되어 있어, 남기만의 시국관을 확인할 수 있다.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리 점구(店丘)에 묘소가 있다. 김굉(金)이 묘갈명(墓碣銘)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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