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는 권11 앞1장과 권14 맨뒤1장 낙장임
2책을 1책으로 합본한 상태임
크기:19*28센치
보내1층21상6
**조선 후기 순천부사를 역임한 문관.
이수광(李睟光)[1563~1628]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峰)이다. 이수광은 태종의 7세손으로 할아버지 대까지 종실의 일원이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선사정(仙槎正) 이승손(李承孫), 할아버지는 신당령(神堂令) 이정(李禎)이었다. 아버지 대부터 관직에 나갈 수 있어서 아버지 이희검(李希儉)[1516~1579]은 병조판서를 지냈다. 어머니 문화유씨(文化柳氏)는 조선 전기 청백리 하정(夏亭) 유관(柳寬)[1346~1433]의 5세손이다.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이성구(李聖求)[1584~1644]이다.
이수광은 23세인 1585년(선조 18)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면서 벼슬길에 올랐다. 순탄했던 관직 생활은 1613년(광해군 5) 인목대비 폐비사건으로 일시 중단되었다. 이때 『지봉유설(芝峰類說)』을 저술하였다. 1616년(광해군 8) 이수광의 나이 54세 때 순천부사에 임명되었다. 순천부사로 부임한 직후 이수광은 순천 지역 곳곳을 다니면서 현지 실정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순천 지역의 조세 부담액을 결정하였다. 이수광은 크게는 학교와 토지제도의 운영에서부터 사소한 소금이나 땔감의 부과에 이르기까지 조세 수취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모두 일정한 규정을 정하여 운영하였다. 이러한 운영은 순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정리하여 편찬함으로써 후임 수령과 순천민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였는데, 그 결과가 『승평지(昇平志)』이다. 이수광은 평소 청렴한 지방관의 표상인 최석의 팔마비 일화를 흠모하였고, 성리학 진흥을 위해 서원 중건에도 노력하였다. 그 결과 순천팔마비와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옥천서원을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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