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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21*31센치
보내1층20상5
**跋: 辛亥(1911)夏至節 黃驪李準九謹書
**개항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성집(聖執), 호는 운오(雲塢)·황연(况淵)·취방(醉放). 조려(趙旅)의 14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조진홍(趙鎭洪)이고, 할아버지는 조태순(趙泰淳)이다. 아버지는 조달직(趙達稙)이며, 어머니는 이유간(李有幹)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해주 정씨(海州鄭氏)와 혼인하였으나 사망하자 다시 이현주(李鉉周)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氏)와 결혼하였다. 자식은 2남 1녀로 모두 해주 정씨의 소생이다. 큰아들은 조영규(趙映奎)이고, 둘째 아들은 조창규(趙彰奎)이며, 딸은 교하 노씨(交河盧氏)노정갑(盧鋌甲)에게 시집갔다.
조성숙(趙性璹)[1843~1898]은 8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14세에는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났다. 이후 관직에 나아가지 않으면서 향촌에 은거해 학문에 힘썼다. 흉년이 들면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휼하기도 하였다.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이 발발하고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이를 개탄하는 글을 허남려(許南黎)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1895년 단발령이 내리자 진주의 의병에 가담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