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목활자본 광산김씨세계보(光山金氏世系譜) 1책완질 > 고서적

본문 바로가기

회원메뉴

쇼핑몰 검색

전화문의

010-3845-4358

회원로그인

오늘 본 상품

  • 조선시대 목활자본 광산김씨세계보(光山金氏世系譜) 1책완질
    조선시대 목활자본
    50,000
  • 중국상해본 백중경(百中經) 1책완질
    중국상해본 백중경(
    50,000
  • 136-최상급 자사도자기 난초문 다관
    136-최상급 자사
    159,000
  • 우표250-1984년 한국우편의 어제와 오늘 10장 한판
    우표250-1984
    10,000
  • 1946년 국민조선역사(國民朝鮮歷史) 최남선(崔南善)
    1946년 국민조선
    250,000
  • 1955년 박목월역 헬만 헷세 향수(鄕愁)
    1955년 박목월역
    80,000
  • 골동-자사도자기 다관
    골동-자사도자기 다
    49,000
  • 1968년 영남대학교 제1회 졸업앨범
    1968년 영남대학
    100,000
  • 1998년초판 서양과 조선
    1998년초판 서양
    22,500
  • 목활자본 경주최씨창절록(慶州崔氏彰節錄) 1책완질
    목활자본 경주최씨창
    200,000
  • 1986년 김초훈시집 사랑굿
    1986년 김초훈시
    30,000
  • 1977년 최현희 만화 장구짱은 힘으로 산다 3책완질
    1977년 최현희
    1,800,000
  • 1975년 부호 만화 형부와 영아 3책완질
    1975년 부호 만
    1,800,000
  • 미사용 나무로된 차탁 5점
    미사용 나무로된 차
    15,000
  • 1948년 헬렌 켈러전
    1948년 헬렌 켈
    50,000
  • 시가라끼 청자 말찻잔
    시가라끼 청자 말찻
    39,000
  • 나무에 매미가 조각된 차스푼
    나무에 매미가 조각
    11,000
  • 1976년 전성우 만화 굳세어라 박달이 3책완질
    1976년 전성우
    1,800,000
  • 1976년 조원기 만화 황금같은 의리 3책완질
    1976년 조원기
    1,800,000
  • 1974년 월간문화재 8월호
    1974년 월간문화
    50,000
  • 634-자연석 수석
    634-자연석 수석
    15,000
  • 1970년 부모보은록(父母報恩錄)
    1970년 부모보은
    70,000
  • 진주가 장식된 팔찌
    진주가 장식된 팔찌
    10,000
  • 1966년 정주상 중학교 펜습자
    1966년 정주상
    50,000
  • 옥풍도원 진사백자봉황문 대완
    옥풍도원 진사백자봉
    39,000
  • 1988년 김민석,강인상 89학력포인트 한샘사회2
    1988년 김민석,
    50,000
  • 9-미개봉 테이프 영인스님 예불 천수경
    9-미개봉 테이프
    20,000
  • 1970년 국어 5-2
    1970년 국어 5
    60,000
  • 당신은철새-누구를위해
    당신은철새-누구를위
    10,000
  • 토기굽다리 접시와 뚜겅
    토기굽다리 접시와
    60,000
  • 빛깔이 좋은 시가라끼 청자잔 3점
    빛깔이 좋은 시가라
    15,000
  • 92-종이바닥에 그린 수묵화 족자
    92-종이바닥에 그
    39,000
  • 516-자연석 수석
    516-자연석 수석
    29,000
  • 목판본 찬도호주주례(纂圖互註周禮)권9,10  1책
    목판본 찬도호주주례
    100,000
  • 보석이 장식된 목걸이 추 2점
    보석이 장식된 목걸
    10,000
  • 112-1943년 조선총독부체신국 보험료영수장
    112-1943년
    20,000
  • 1998년7월16일 한겨레21
    1998년7월16일
    20,000
  • 1973년 국립경주박물관 명품선
    1973년 국립경주
    42,500
  • 괴목 무뉘목을 조각한 사과 노리개
    괴목 무뉘목을 조각
    20,000
  • 1995년 한겨레21 9월28일자 잡지
    1995년 한겨레2
    15,000
  • 1789년 목판본 박인(朴絪) 무민당선생문집(无悶堂先生文集)5책완질
    1789년 목판본
    600,000
  • 조선시대 호와낙관이 있는 글씨
    조선시대 호와낙관이
    30,000
  • 1947년초판 안호상(安浩相) 철학강론(哲學講論)
    1947년초판 안호
    400,000
  • 1993년 새벗 1월호 잡지
    1993년 새벗 1
    50,000
  • 사스마분청자 진사금채화문 투각 대완
    사스마분청자 진사금
    39,000
  • 1990년 브들레르외 세계시선
    1990년 브들레르
    20,000
  • 나무에 금채화문된 4단서랍장
    나무에 금채화문된
    29,000
  • 미사용 원목나무로된 결이좋은 굽다리완
    미사용 원목나무로된
    69,000
  • 1967년초판 불경 장수멸죄경(長壽滅罪經)
    1967년초판 불경
    100,000
  • 1996년 주부생활 12월호
    1996년 주부생활
    50,000
  • 근대사 미사용 물통
    근대사 미사용 물통
    15,000
  • 중국상해본 당송팔가문초독본(唐宋八家文鈔讀本)7책
    중국상해본 당송팔가
    150,000
  • 2006년 공지영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06년 공지영
    20,000
  • 분청사기 초화용문 편병호
    분청사기 초화용문
    69,000
  • 1986년 스크린 2월호
    1986년 스크린
    50,000
  • 골동-연대가좋은 청자 해태 향로
    골동-연대가좋은 청
    289,000
  • 청화백자 도자기로된 개 조각상 3점
    청화백자 도자기로된
    15,000
  • 청자 철화화문 소호
    청자 철화화문 소호
    20,000
  • 청무뉘옥 옥노리개
    청무뉘옥 옥노리개
    10,000
  • 1999년 김찬종 교회는 이렇게 성장한다
    1999년 김찬종
    10,000
  • 1989년 바바하리다스 류시화옮김 성자가 된 청소부
    1989년 바바하리
    20,000
  • 1940년 대구간행 영양남씨세보(英陽南氏世譜)권16,17,20,21  2책
    1940년 대구간행
    200,000
  • 청동으로된 영보재(榮寶齋) 배모양 연적
    청동으로된 영보재(
    59,000
  • 1964년 세계명가153곡집
    1964년 세계명가
    40,000
  • 1382-미개봉 테이프 JEAN REDPATH
    1382-미개봉 테
    20,000
  • 펜탁 카메라
    펜탁 카메라
    15,000
  • 이마리 청화백자 청채화문잔 5점
    이마리 청화백자 청
    59,000
  • 1963년 아동문학 제7집
    1963년 아동문학
    100,000
  • 연대좋은 청자잔 2점
    연대좋은 청자잔 2
    10,000
  • 1879년(명치12년) 일본목판본 주산문제 권5
    1879년(명치12
    50,000
  • 골동 연대가좋은 청동으로된 소리가 좋은 좌종
    골동 연대가좋은 청
    20,000
  • 풍경화 족자 영인본
    풍경화 족자 영인본
    15,000
  • 네덜란드산 담뱃대
    네덜란드산 담뱃대
    99,000
  • 연대가좋은 청자 입넓은 호
    연대가좋은 청자 입
    39,000
  • 청자 음각국화문 향합
    청자 음각국화문 향
    39,000
  • 고필사본 호남절의록서문,정묘기사.시행사례축식,기제의,묘제의 등
    고필사본 호남절의록
    50,000
  • 목판본 허목(許穆) 미수선생년보 권1~3  1책
    목판본 허목(許穆)
    150,000
  • 1972년 월간 잠사 7월호
    1972년 월간 잠
    50,000
  • 1995년 점보코믹스만화 헝그리 베스트 5  18
    1995년 점보코믹
    10,000
  • 1970년 일본간행 잠계의 광 10월호
    1970년 일본간행
    30,000
  • 금속재질에 칠보된 나비 브롯지
    금속재질에 칠보된
    10,000
  • 2009년 밀양출신 항일독립운동가
    2009년 밀양출신
    20,000
  • 1964년 의사안중근전기(義士安重根傳記)
    1964년 의사안중
    150,000
  • 돌꽃이 많이핀 에도시기 돌불상입상
    돌꽃이 많이핀 에도
    890,000
  • 183-근대사 미개봉 테이프 성주지신풀이
    183-근대사 미개
    10,000
  • 철화백자 초화문 대완
    철화백자 초화문 대
    59,000
  • 1969년 진봉천 비공개된 달정복과 그사람들
    1969년 진봉천
    20,000
  • 1962년 고등국어 1
    1962년 고등국어
    50,000
  • 1991년 이풀잎시집 이별은 헤어짐이 아니라 ...
    1991년 이풀잎시
    20,000
  • 1977년 한약(漢藥) 제4집
    1977년 한약(漢
    40,000
  • 대나무가 조각된 화대
    대나무가 조각된 화
    20,000
  • 1958년(단기4291년) 강소천 동화집 종소리
    1958년(단기42
    500,000
  • 1984년 음악 4
    1984년 음악 4
    50,000
  • 2007년 어린이 그림 영한사전
    2007년 어린이
    10,000
  • 1972년 김동인(金東仁) 雲峴宮의 봄(운현궁의 봄)
    1972년 김동인(
    50,000
  • 1946년 중등한문독본(中等漢文讀本) 권2
    1946년 중등한문
    200,000
  • 칠보 돼지 액자
    칠보 돼지 액자
    39,000
  • 우표260-1984년 대통령방한기념 20장 한판
    우표260-1984
    10,000
  • 연대가좋은 구다니 금채진사화문 자완
    연대가좋은 구다니
    10,000
  • 청화백자 동자문 자완
    청화백자 동자문 자
    10,000
  • 석판본 포효록(褒孝錄)
    석판본 포효록(褒孝
    30,000
  • 1969년 사회 6-1
    1969년 사회 6
    100,000
  • 순백자 음각화문 개인잔
    순백자 음각화문 개
    15,000
  • 석판본 김영만(金永萬) 월파창수록(月坡唱酬錄) 1책완질
    석판본 김영만(金永
    80,000
  • 조선시대 목판본 동의보감(東醫寶鑑)잡병편 권8 1책
    조선시대 목판본 동
    200,000
  • 연대가 좋은 구곡가마작품의 청화백자 산수문주병
    연대가 좋은 구곡가
    20,000
  • 2011년 논술만화 사이언스플러스 컴퓨터의 세계
    2011년 논술만화
    10,000
  • 대나무에 천으로된 부채
    대나무에 천으로된
    10,000

커뮤니티 최신글

접속자집계

오늘
9,300
어제
9,621
최대
62,935
전체
12,822,282

옛날물건 재고 현황

고서적
3,537,855,000원/14,067건
근대도서
3,255,403,500원/41,780건
근대시집
379,995,000원/2,791건
희귀고서적
1,102,930,000원/2,748건
교과서
442,295,000원/5,458건
간찰
80,545,000원/1,535건
한국미술품
405,567,000원/3,468건
일본미술품
988,154,500원/23,501건
중국미술품
500,465,000원/9,684건
기타
1,090,578,500원/11,395건
전체합계
11,783,788,500원/116,427건
조선시대 목활자본 광산김씨세계보(光山金氏世系譜) 1책완질 > 고서적
리뷰 0 위시 0

조선시대 목활자본 광산김씨세계보(光山金氏世系譜) 1책완질 요약정보 및 구매

조선시대 목활자본 광산김씨세계보(光山金氏世系譜) 1책완질(조선시대 목활자본)

상품코드 1214718700
제조사 또는 연대 조선시대 목활자본
모델 3002894
판매가격 50,000원
포인트 500점
배송비결제 주문시 결제
최소구매수량 1 개
최대구매수량 1 개

상품의 재고가 부족하여 구매할 수 없습니다.

상품 정보

상품 기본설명

조선시대 목활자본 광산김씨세계보(光山金氏世系譜) 1책완질(조선시대 목활자본)

상품 상세설명

조선시대 목활자본 광산김씨세계보(光山金氏世系譜) 1책완질 상태좋으며 낙장없음 크기:33.7*21.2센치 보22상2 **광산김씨(光山金氏)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신무왕의 세째 아들이다. 그는 장차 국난이 있을것을 미리 알고 현재의 전남 담양군 대전면 평장동에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살았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이 본관을 광산으로 하게 되었고 후손들 가운데 평장사가 계속 8명이 배출되자 사람들이 그곳을 평장동이라 불렀다 10세손 김체의 아들 김위(金位)와 김주영(金珠永) 형제 대에서 크게 두갈래로 나뉘어져 김광세(金光世)와 김광존(金光存)의 양대산맥으로 이어진다. 김광세는 중랑장(中郞將)을 지내고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증되고 그의 아들 김경량(金鏡亮)이 대장군(大將軍)에 올랐고, 손자 김수(金須)는 삼별초의 난 때 순절하였으며, 김주정(金周鼎)은 고려 충렬왕 때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를 역임하였다. 김수의 손자인 김광재(金光載 : 문정공 김태현의 셋째 아들)는 공민왕 때 난정이 시작되자 두문불출하였으며 어머니가 죽자 무덤가에 여막(廬幕)을 짓고 거상(居喪)하니 왕이 그의 효성을 가상히 여겨 그가 사는 곳에 영창방효자리(靈昌坊孝子里)라는 정표(旌表)를 세우게 했다. 세종 때에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지낸 김예몽(金禮蒙)의 아들 김성원(金性源)은 세조 때 동국여지승람(東國與之勝覽)을 편찬했고, 손자 김구(金絿)는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의 혁신정치에 동조한 소장파로 김정(金淨), 김식(金湜), 한충(韓忠) 등과 더불어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일컬어졌으며 뛰어난 필법과 명문장으로 외교문서를 집필했고 그가 살던 인수방(仁壽坊)의 마을 이름을 붙여 인수체(仁壽體)란 필체가 생겨났다. 당적보(黨籍譜)에 의하면 김구(金絿)는 중국 사람들이 자기의 글씨를 귀중히 안다는 말을 듣고는 글씨를 쓰지 않아 세상에 남은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중종 때의 우의정(右議政) 김극성(金克成)은 30여 년간 벼슬에 있으면서 경륜과 계책이 비상하여 조정에서 명성을 날렸다. 김광존의 인맥을 살펴보면 그의 현손 김진이 대제학(大提學)에 올랐고, 김진의 증손 김약채(金若采)에서부터 조선 시대의 명맥이 이어졌다. 고려말에 문과에 급제한 김약채는 대사헌(大司憲)을 거쳐 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都觀察使)를 지냈고, 그의 동생 김약항(金若恒)은 공민왕 때 대사성(大司成)으로 사신이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표문(表文)이 공손치 못하다고 하여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양자강변에 유배되었다가 마침내 돌아오지 못하였다. 뒤에 황제의 노여움이 풀려 가족에게 시체를 찾아가라고 하여 늙은 여종이 부인이라고 핑계하고 남경까지 가서 시체를 찾아왔다. "용재총화"에 보면 김약항의 아들 김처(金處)는 아버지가 외국에서 죽었으므로 충격을 받아 미친병이 들어 소리내어 울고 밤에는 싯귀(詩句)를 길게 읊으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비틀거리고 다녔으며, 김허(金虛)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렀고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 상을 당하자 여막(廬幕) 벽에다가 효경(孝經)의 상친장(喪親章)을 써서 붙이고 날마다 바라보며 읽고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이도록 울기를 3년동안 조금도 쉬지 않았으니 그 비참하게 우는 소리에 듣는 사람이 눈물을 지었다고 한다. 김약채의 증손자 김국광(金國光)은 성종 때 좌의정(左議政)이 되고 좌리일등공신(佐理一等功臣)으로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일찍이 황희(黃喜)가 그를 한번 보고 큰 인물로 인정하여 자기 손녀(孫女 : 소윤 황보 신의 딸)로서 아내로 삼아 주었고 "작게 성취할 사람은 아니다"하고 그를 대할 때 반드시 갓을 썼다고 한다. 세조가 상정국(詳定局)을 열어 당시의 학문이 뛰어난 신하를 뽑아 조종의 옛 제도를 참작하고 시대의 사정에 맞게 가려내어 "경국대전(經國大典)"을 편찬할 때 그도 뽑히어 뛰어난 업적을 남겨 세조가 "국광같은 사람은 참으로 문과 무 를 겸비한 재사이다" 하고 "사지제일(事知第一)"이라는 친필을 써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어느 날은 편전에 있으면서 손수 자기 밥을 떠 먹여 주었다고 한다. 김국광의 동생 김겸광(金謙光)은 성종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 하는 데 공을 세워 좌리삼등공신(佐理三等功臣)으로 광성군(光城君)에 봉해졌다. 김국광의 아들 김극뉴는 대사간(大司諫)을, 김극복(金克福)은 찬성(贊成)을 역임하였다. 김겸광의 아들 김극핍은 연산군 때 바른 말을 하다가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고산현(高山縣)으로 유배되었고 권신 김안로(金安老)의 탄핵을 받아 일생을 귀양지에서 생활했었다. 김극뉴의 손자 김개(金鎧)는 명종 때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오르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으며, 증손 김계휘(金繼輝)는 선조 때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고 성리학(性理學)과 예학(禮學)에 능통하여 국사가 있을 때마다 자문에 응했다. 김계휘의 동생 김은휘(金殷輝)가 일찍이 초야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광해군이 세자로서 동궁에 거처하게 되자 세자빈의 아버지인 류자신(柳自新)이 궁중의 서헌(西軒)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러자 김은휘(金殷輝)는 그의 무례함을 논책하면서 왕봉(王鳳 : 한나라 성제의 외삼촌으로 정권을 잡아서 무례한 행동으로 임금의 거처인 궁정을 빌린 일이 있었다)의 고사에 비교하니 깜짝 놀라서 피하였다고 한다. 특히 그는 송익필(宋翼弼)이 아버지인 송사련(宋祀連)의 잘못으로 세론의 증오를 받아 멸문의 궁지에 몰리자 10년 동안이나 먹여 살려 선조의 잘못으로 누를 입는 현량(賢良)들을 그늘에서 구원하였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은 조선 예학(禮學)의 종주(宗主)로 가문에 명문의 뿌리를 더욱 깊이 내리게 한 장본인이다. 1548년(명종 3년) 대사헌(大司憲) 김계휘(金繼輝)의 아들로 태어나 당대에 8문장가로 이름난 송익필에게 예학을 배우고 석학(碩學) 이율곡(李栗谷)에게 성리학을 전수받아 영남학파(嶺南學派)와 쌍벽을 이룬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영수가 되었다. 천성이 겸손하며 어질고 후하여 자연히 도(道)에 가깝고 학문하는 방법은 한결같이 종자(種子)와 주자(朱子)를 법으로 삼아 세상살이의 화려함을 싫어하였으며 당시의 예(禮)에 관한 질문은 모두 그에게로 왔다. 인조반정 때 맨 먼저 장령(掌令)에 임명하면서 안거(安車 : 늙고 병든 사람이 편안하게 탈 수 있는 수레)와 임금의 친서를 보내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으며 병든 몸으로 여러 훈신들에게 글을 보내기를 "시종(始終) 삼가하여 임금의 덕을 잘 보도하며 묵은 폐단을 개혁하고 형벌을 신중히 하며 공도(公道)를 넓히고 사사로이 가까운 내시, 궁녀 등을 경계하며 염치를 존중하고 검약을 몸소하라"고 하였다. 마침내 그의 글이 임금에게까지 알려지고, 임금이 그의 재능과 덕망을 정치에 이용하고 싶어 초조해 했다고 한다. 벼슬은 가의대부(嘉義大夫)로 형조 참판(刑曹參判)에 그쳤으며 83세에 연산에서 생을 마치며 후손에게 다음 두 가지 유언을 남겼으니, "첫째 영정(影幀)은 머리칼 하나가 틀려도 제 모습이 아니니 쓰지말 것, 둘째 내 자손이 수십대에 이르더라도 의(誼)를 두터이 지낼 것" 이었다. 그가 남긴 "경서변의(經書辯疑)" 8권, "의례문해(疑禮問解)" 8권,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1권, "가례집람(家禮集覽)" 3권, "상례비요(喪禮備要)" 1권 등 총21권의 저서는 한국의 예전(禮典)으로 평가된다. 김장생의 예학은 아들 김집(金集)에게 이어지고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에게 전승되어 조선 예학의 태두로 예학파의 주류를 형성했다. 김집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남보다 특이하여 충신효제(忠信孝悌)로서 몸을 세우는 근본을 삼았으며, 이치를 탐구하고 경(敬)를 주장하는 것으로 도학의 터전을 삼았다. 1646년(인조 24년) 산적 류탁(柳濯) 등이 난을 일으켰는데 그 무리들에게 류탁이 말하기를 "김승지(金丞旨 : 김집)의 집을 지나가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임금이 이 말을 듣고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흉악한 무리들도 어진 사람을 두려워 하고 피할 줄은 안다"하였다. 그는 아버지 김장생을 40여 년간 모셨는데 그 부자의 법도를 지켜 아들이 질문했을 때 아버지는 몸이 앓는 일이 있어도 단정히 앉아서 대답한 것이라든지, 각상(各床)과 각방(各房)에서 밥을 먹을 때 아버지의 젓가락 놓는 소리를 듣지 않고는 미리 밥상을 물리는 법이 없었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부인 유씨(兪氏)의 성품이 분명하지 못하여 부부의 도리를 갖출 수가 없어 마침내 이율곡(李栗谷)의 서녀(庶女)를 얻어 첩을 삼았는데 어질고 여공(女工)을 잘하였다. 유씨 부인이 죽자 그의 아버지 김장생은 아들이 상처하였으니 후처를 얻어 아들을 낳아서 선대를 계승할 수 있겠다고 속으로 좋아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각각 운명이 있는 법인데 운명이 좋지 않아서 먼저 사람(유씨)과 짝이 되어 평생동안 욕을 보았는데 이제 비록 다시 장가 든다고 하여도 꼭 먼저 사람보다 나을 줄 알겠습니까?" 하며 대를 잇지 못하였다. 이조참판(吏曹參判) 김반(金槃: 김집의 동생)의 아들 김익희(金益熙)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척화론자(斥和論者)로서 화의를 반대했고 왕을 호위하여 남한산성에 가서 독전어사(督戰御史)로 싸웠으며, 그의 동생 김익겸(金益兼)은 병자호란 때 어머니 서씨(徐氏)를 데리고 강에 들어가 성을 사수하다가 함락되기 직전에 김상용(金尙容)과 함께 남문에 올라가 자폭하여 영의정에 추증되고 광원부원군(光源府院君)에 추봉되었다. 숙종때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의 주역인 김익훈(金益勳 : 김반의 아들로 김익겸의 동생)은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정권을 다시 잡자 강계로 유배되었다. 현종 때의 예조참판(禮曹參判) 김익경(金益炅)은 죽은 인선왕후(仁宣王后)에 대한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 문제에 송시열 등과 함께 대공설(大功說)을 주장하다가 양성(陽城)으로 귀양갔다. 인경왕후(仁敬王后 : 숙종의 비)의 아버지인 김만기(金萬基)와 효자 김만중(金萬重)은 김익겸의 아들로서 형제가 나란히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한 명신이다. 특히 김만중은 유복자로 태어남을 평생의 한으로 삼고 홀어머니 윤씨(尹氏)의 곁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고 하며 어머니를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밤낮으로 어머니와 얘기하며 동물 흉내와 어린이 흉내까지 내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남해의 유배지에서 쓴 한글소설 "구운몽(九雲夢)"은 부귀공명이 일장춘몽이란 내용으로 그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하여 썼다고 한다. 그밖의 인물로는 중종의 딸 혜순옹주(惠順翁主)와 혼인하여 광천위(光川慰)에 봉해진 김인경(金仁慶)과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안동지방의 학문융성 창도자로 알려진 김언기(金彦璣)가 유명했고, 전적(典籍) 김세우(金世愚)의 아들 김규는 명종 때 문과에 장원하여 벼슬이 판윤(判尹)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의 명장 김덕령(金德齡)은 충절로 가문을 빛낸 자랑스런 인물이다. 그는 1567년(명종 22년) 광주 석지촌에서 김붕섭(金鵬燮)의 아들로 태어나 성리학의 대가인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학문을 연마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성 현감(長城縣監) 이귀(李貴)의 천거로 익호장군(翼虎將軍)의 호를 받고 의병을 정돈하여 선전관(宣傳官)이 되어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수차에 걸친 전쟁에 공을 세웠다. 그는 젊어서부터 뛰어난 용맹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일찍이 이귀(李貴)가 그를 천거하는 글에 "지혜는 공명과 같고 용맹은 관우보다 낫다"고 하였다. 1596년(선조 29년) 이몽학(李夢鶴)이 홍산(鴻山)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를 토벌하려다가 이미 진압되어 도중에 회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신경행(辛景行 : 당시 충청도 순찰사 종사관)의 무고로 국문을 받다가 옥사했다. 그가 임전했을 때는 항상 철퇴 두개를 허리에 차고 다녔는데 그 무게가 백근이나 되어 팔도에서 그를 신장(神將)이라 불렀고, 왜군들도 그의 용맹을 무척 두려워 했다고 한다. "난중잡록(亂中雜錄)"에 의하면 왜장 기요마사(加藤淸正)는 그 명성을 듣고 몰래 화가를 보내어 그 얼굴을 그려다가 보고는 "참으로 훌륭한 장군이다"하고 항상 계엄하였고, 뒤에 김덕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술을 마시고 기뻐 날뛰면서 "이제 양호(兩湖)는 걱정이 없다"고 했다 한다. 임진왜란 때의 김만수(金萬壽), 김천수(金千壽), 김백수(金百壽), 김구수(金九壽) 4형제는 의병을 일으켜 유극량(劉克良)의 군대와 장단에서 합세하여 임진강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김광운(金光運)과 김두남(金斗南)은 진주 전투에서 장렬하게 순절하였고, 선조 때 대북의 지도자였던 김질간(金質幹 : 이조 참판을 역임)은 "동몽훈설(童蒙訓說)"을 저술한 김진우(金震羽), 호남 8문장의 한 사람인 김공선(金公善) 등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그외 선조 때 포도시(葡萄詩)로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쳤던 김영남(金潁南)과 숙종 때 예서에 능했고 "옥산유고(玉山遺稿)"를 남겼던 김우형(金宇亨 : 공조판서를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감)이 뛰어났으며, 김진(金搢)은 정주 목사(定州牧使)를 지내고 볼모로 심양에 갔다가 두문불출하고 학문에만 진력했다. 영조 때 알성문과에 급제한 김양택(金陽澤)은 부제학(副提學)과 대사성(大司成), 우의정을 거쳐 1776년(영조 52년) 영의정에 올랐으며, 김상복(金相福)은 영의정을 역임하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전임되었다. 한말에 와서는 금위대장(禁衛大將) 김기석(金箕錫)과 학문과 덕망이 높아 사림의 추앙을 받았던 김지수(金志洙) 등이 가문의 맥을 이었고, 김재풍은 친러시아파 세력에 쥐어 허덕이는 국권을 회복하는데 앞장서서 한말 풍운에서 고절(古節)있는 대인(大人)으로 추앙받았다. 김익현(金翼鉉)의 아들인 김영덕(金永悳)은 국운이 기울어가는 한말에 죽음으로써 한일합방을 반대하여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김영숙(金永肅)과 함께 명문 광산김씨를 더욱 빛냈다.





상품 정보 고시

품명 상품페이지 참고
모델명 상품페이지 참고
법에 의한 인증·허가 등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그에 대한 사항 상품페이지 참고
제조국 또는 원산지 상품페이지 참고
제조자 상품페이지 참고
A/S 책임자와 전화번호 또는 소비자상담 관련 전화번호 상품페이지 참고

사용후기

등록된 사용후기

사용후기가 없습니다.

상품문의

등록된 상품문의

상품문의가 없습니다.

배송정보

현재 옛날물건 쇼핑몰에서는 동일 주문건에 대해서 수량 상관없이 3,000원 이며 주문금액이 100,000원 이상이면 무료 배송 됩니다.

배송지역이 도서 산간지역이거나 일반택배 부적합 상품의 경우 추가 배송비가 청구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담당자가 전화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한 옛날물건 쇼핑몰에서는 로젠택배를 이용 합니다.


주문 시 배송비 문제가 발생하면 옛날물건 담당자에게 전화 주십시오.

교환/반품

입력된 교환/반품 정보가 없습니다.

회사명 옛날물건 주소 경남 밀양시 중앙로 80-6 (가곡동)
사업자 등록번호 615-03-17906 대표 김동영 전화 010-3845-4358 팩스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03-14호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김동영
Copyright © 2001-2013 옛날물건. All Rights Reserved.

전화문의

010-3845-4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