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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연선생문집(月淵先生文集)2권1책완질 이태(李태) 밀양(密陽)출신 요약정보 및 구매

월연선생문집(月淵先生文集)2권1책완질 이태(李태) 밀양(密陽)출신(1911년(목활자본))

상품코드 1150961586
제조사 또는 연대 1911년(목활자본)
모델 300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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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연선생문집(月淵先生文集)2권1책완질 이태(李태) 밀양(密陽)출신(1911년(목활자본))

상품 상세설명

1911년(목활자본)으로 간행된 이태(李태)선생의 월연선생문집(月淵先生文集)2권1책완질 상태좋으며 파장없음 크기:30.5*20.3센치 **月淵 李태;(1483·1536)의 詩文集. 원래 그의 詩文은 많았다고 하는데 壬辰倭亂 때 거의 없어지고 남은 것을 5世孫 萬材 등이 遺稿를 衰集하여 1편을 이루었다. 그 후 1872년(高宗 9) 天燮, 鍾述 등 후손들이 힘을 합쳐 보완하여 騎牛子 李行(天燮의 14代祖)의 文集과 합간하여 ≪二祖實記≫라고 하였던 것을 그 후 再三 重刊하였다. 本集은 1911년에 後孫인 守馨, 宇九, 東錫 등에 의하여 重刊된 것이다. 李迨의 자는 仲豫, 호는 月淵, 본관은 驪州이다. 일찌기 孝友篤實로 이름이 있었다. 慕齋 金安國의 門人으로 思齋 金正國, 沖齋 權■, 聾岩 李貿輔 등의 學者들과 交遊하면서 學問에 힘썼다. 1507년(中宗 2)에 司馬試를 거쳐서 1510년에 式年文科에 丙科로 及第, 藝文館 檢閱 등을 거쳐 1512년 奉敎로 있다가 모친의 병을 稱托하고 辭職하였는데 臺諫의 거짓이란 탄핵으로 杖刑을 받기도 하였다. 그 후 司諫院 正言, 弘文館 典翰 등을 지냈다. 이때 權臣인 金安老가 屛風의 글씨를 請하였는데 "내 손이 어찌 權貴에게 더럽힘을 받겠느냐"고 하면서 거절했다 한다. 1519년에 咸鏡道 都事로 있을 때 南袞·沈貞이 己卯士禍를 일으키자 그 날로 벼슬을 버리고 凝川으로 내려가 山水를 즐기면서 月淵臺를 짓고 自號를 月淵이라 하고 吟風弄月로 歲月을 보냈다. 그 후 1532년 등용되어 三陟府使가 되었으나 탐학했다는 罪로 臺諫의 탄핵을 받자 鄕里로 돌아와 隱退하여 學問에만 힘썼다. 卷首에는 1872년에 許傳이 쓴 序文과 都承旨 姜蘭馨이 쓴 後序가 있고 앞에 29世까지의 世系圖가 있다. 卷1 : 詩 11수(入直翰苑, 次李聾岩棐仲賢輔愛日堂韻 등)에 原韻이 附錄되어 있고, 1524년 承文院 校檢 때 지은 碑銘 1편(梁伯隆墓碣銘, 汝昌)이 있다. 附錄으로 崔述이 지은 行狀, 撰者 未詳의 墓碣銘, 5대손 萬材의 上記 墓碣銘의 後識, 柳厚祚가 쓴 墓銘, 1866년에 崔孝述이 쓴 立碑告文, 李萬運이 쓴 栢谷祠奉安文, 言行摭錄이 실려 있다. <言行摭錄>에는 8대손 秉泰가 權■의 日記, 魚得江의 記錄, 金正國의 手錄, 朝野記事 등에서 月淵에 관한 記事만 뽑아 모은 것이다. 이어서 10代孫 章雲이 쓴 遺事, 洪晟과 外玄孫 權斗寅이 각각 쓴 雙鏡堂記 2편, 權思浩가 쓴 雙鏡堂重修記가 있다. 卷2 : 李宜翰이 쓴 雙鏡堂上樑文, 6대손 之復이 쓴 雙鏡堂記事後識, 1869년 柳厚祚가 지은 月淵臺重建記, 1871년에 副承旨 李敦禹가 쓴 上同記, 都承旨 姜蘭馨이 쓴 上同記, 10대손 章雲이 지은 月淵臺上樑文이 있다. 附錄의 諸賢唱酬錄에는 企齋 申光漢, 灌圃 魚得江 등의 次柳涵之韻寄呈李仲豫의 詩 4수와 月淵臺十二景 외에 巴南 金濟潤 등의 詩 11수가 있다. 卷尾에 9대손 天燮과 李敦禹가 쓴 跋文 2편, 1911년에 李中植이 쓴 重刊跋文이 있다. 책 끝에 月淵의 遺墨이 있다. **이태(李迨) 1483-1536 (성종14-중종31)字: 仲豫‚ 號: 月淵‚ 本貫: 驪州‚ 父: 師弼‚ 母: 文化 柳氏 밀양 출신. 金安國(1478-1543)의 문인. 1507년(중종 2년) 司馬試를 거쳐 1510년(중종 5년) 式年文科에 丙科로 급제. 1512년 奉敎로 있다가 金安老가 정사를 전횡하자 모친의 병을 핑계로 사직했다. 이에 臺諫의 탄핵으로 杖刑을 받았다. 1519년 함경도 都事로 재직중에 己卯士禍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학문에 전념했다. 己卯士禍에 아무런 해를 입지 않아 己卯完人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뒤에 등용되어 1532년 三陟府使가 되었으나 탐학하다는 죄로 臺諫의 탄핵을 받아 삭직된 후 향리에 은퇴했다. 은퇴한 후에는 月淵臺와 雙鏡堂를 짓고 月淵主人‚ 琴書子로 자칭하면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金正國(1485-1541)‚ 李賢輔(1467-1555)‚ 權撥(1478-1548)‚ 申光漢(1484-1555)‚ 魚得江(1470-1550) 등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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