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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있는 간찰첩1책 요약정보 및 구매

기품있는 간찰첩1책(1850년)

상품코드 1142240189
제조사 또는 연대 18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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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품있는 간찰첩1책(1850년)

상품 상세설명

*전의(全義)이씨 이흥민(李興敏)일명 이광민(李光敏) 간찰18장 헌종14년무신년(1848년) 증광시 병과20 선생은1809년己巳年에 태어났고 부친은 이익회,조부는 이득배이며 사헌부지평,홍문관부교리,옥당,사간원정언을 지내고 1849년(헌종15년)이후 이름을 개명하였 으며 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사간원대사간,승정원승지,이조참판,사헌부대사헌,함경도관찰사, 예조판서,이조판서등을 역임하였음 1852년(壬子年)과 1866년(丙寅年)3월18일,1867년(丁卯年)7월12일,1868년(戊辰年)7월,8월,10월 1869년(己巳年)2월11일,4월,6월등에 쓰신간찰입니다, *정기세(鄭基世) 간찰1장 1814(순조 14)∼1884(고종 21).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성구(聖九), 호는 주계(周啓)이다. 영의정 정원용(鄭元容)의 아들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헌종 3년(1837)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충청우도 암행어사를 거쳐 응교 · 대사성을 지내고, 철종 4년(1853) 강화도 조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강화부 유수에 임명되었다가 1854년 전라도 관찰사 · 좌참찬 · 예조 판서를 역임하고, 1862년 임술민란이 일어나자 판의금부사와 형조 판서로서 이정청 당상(釐整廳堂上)이 되었다. 고종 즉위 후 중임되어 1864년 병조 판서, 1876년 이조 판서를 지내고 뒤에 우찬성에 이르렀으며 《대전회통(大典會通)》 편찬을 위한 교식찬집소(敎式纂集所) 교정당상(校正堂上)이 되었다. 신미양요 때에는 광주 유수로 있다가 내직으로 들어와 각조의 판서 · 제학 · 시강원 빈객으로 있었고, 임오군란 전에는 수원 유수로 있다가 군란이 수습된 후에 한성부 판윤으로 전임되었다. 문장과 서예에 조예가 있었고 성격이 겸손하여 다른 사람을 거스르지 않았으며 기쁜 일을 잘 알려주어 까치판서라고 하였다. *서희순(徐熹淳) 간찰1장 1793(정조 17)∼?.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치회(穉晦), 호는 우란(友蘭)으로 아버지는 군수 서응보(徐應輔)이고 할아버지는 이조 판서 서유녕(徐有寧)이며, 영의정 서용보(徐龍輔)는 그의 숙부이고, 어머니는 김해(金海) 김씨(金氏)로 김현성(金顯性)의 딸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학업을 닦다가 순조 16년(1816) 문과에 급제, 권돈인(權敦仁) · 정지용(鄭知容) 등과 함께 예문관 검열로서 활약하였다. 이어서 대교(待敎)로 승진하고, 1824년에는 특진되어 대사성으로서 당상관이 되었다. 곧이어 이조 참의 · 대사간 · 부제학 등을 역임하면서 업무를 공평 무사하게 처리하였고, 기강확립에 힘썼다. 1833년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나가 민정을 바로 처리하여 칭송이 높았고, 다시 내직으로 옮겨 대사헌 · 형조 판서를 지내며 공공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하였다. 헌종 4년(1838) 처음으로 한성부 판윤이 되어 수도 한성의 행정과 치안을 주관하면서 특히 민폐를 시정함에 노력하였다. 그 후 예조 판서 · 병조 판서 · 형조 판서를 역임하고, 1842년 두번째 한성부 판윤이 되어 시정을 주관하였다. 그러나 곧 예조 판서로 전임되어 4년에 걸쳐 국가의례를 정립함에 힘썼다. 그 사이에 수원부 유수(水原府留守)로서 새 도시 건설에도 힘쓴 바 있으나, 곧 내직으로 옮겨 좌참찬 · 상호군 · 형조 판서 · 예조 판서 · 병조 판서 · 이조 판서 · 호조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는데, 특히 인사행정에 밝아 오랫동안 이조 판서를 맡았다. 그후에는 판돈녕부사 · 호조 판서를 오래 역임하며 공시(貢市) 업무를 맡아 국가 재정을 관리하였다. 이때의 그의 득세는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의 세력 다툼 속에서 달성서씨도 나름대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종(哲宗)이 즉위하여 안동 김씨의 세도가 강화되면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 한직으로 밀려나기도 했으나, 그의 행정력을 따를 만한 사람이 없어 철종 6년(1855) 다시 이조 판서에 기용되었다. 그러나 다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물러나 있다가 진위진향사(陳慰進香使)로 청나라에 다녀 온 후에는 벼슬에서 물러나 학업을 익히며 여생을 보냈다. 행정과 문장에 뛰어나 인사 · 재정 · 의례를 주관하면서 매사를 잘 처리하였다. 시호는 숙헌(肅獻)이며 헌종(憲宗) 묘단에 배향되었다. *홍우길(洪祐吉) 간찰1장 1809(순조 9)∼1890(고종 27).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여(成汝), 호는 애사(靄士)이다.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홍정주(洪定周)의 아들로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철종 1년(1850)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급제하여 정언(正言) · 지평(持平) 등을 거쳐 철종 7년(1856) 대사성(大司成)이 되었다. 1858년 경상도 관찰사에 이르고 도총관(都摠管) · 예조 판서 · 한성부 판윤(1861년, 1867년) · 형조 판서 · 대사헌(大司憲) · 이조 판서 등을 역임하고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여러 번 지냈다. 1862년에는 이청당상(釐廳堂上)으로 차출되었으며,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는 지방 수령들의 불법적인 탐학을 징계하기도 했다. 그는 서화(書畵)에 뛰어났다고 하며, 시호는 효문(孝文)이다. 저서로 《연탄집(硏灘集)》이 있다 **간찰첩크기:51*40센치,뚜께:5센치 **상태아주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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