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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청헌선생(十淸軒先生) 1책(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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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청헌선생(十淸軒先生) 1책 상태아주좋으며 파장없음 1985년 간행본임 보14-4-4 **십청헌선생의 문집을 후대에 정리한 책임 *十淸先生集(奎5219), 金世弼(朝鮮)著, 李植(朝鮮)編. 4卷 2冊 活字本(木活字) 30.5×19cm. 四周單邊 半郭:22.5×13.9cm. 10行 21字 注雙行. 版心:上白魚尾. 金世弼(1473∼1533)의 詩文集으로 그의 後孫 金光岳이 1747년(英祖 23)에 간행하였 다. 卷首에 澤堂 李植의 序文이 있고 附錄으로 아들 金??(1512∼1547)의 行錄을 실었 다. 編輯 및 校正은 澤堂 李植이 100여년전인 1627년(仁祖 5)에 간행하였음이 序文에 밝혀져 있다. 金世弼은 李荇(1478∼1534)과 巨濟島에 함께 유배된 적이 있으며 李荇의 文集中 詩의 聯句 가운데에는 金世弼의 詩句가 흔히 나오므로 저자의 詩文集을 보기를 원해오던 李植은 1627년 忠州牧使로 나갔을 때 前縣監 金仁龍의 집에서 未整理된 遺稿 1冊을 발견하고 이를 정리·교정하였다고 기록되었다. 李稙은 李荇의 4대손이오 金仁 龍은 金世弼의 3대손이다. 金世弼의 자는 公碩, 호는 十淸軒 또는 知非翁, 본관은 경 주이다. 1495년(燕山君 1) 司馬試와 式年文科에 丙科로 급제, 修撰持平등을 거쳐 吏曹 參判에 이르렀다. 學行과 文章이 뛰어났으나 여러 士禍를 거치는 동안 험난한 생을 보 냈다. 甲子士禍로 巨濟에 유배되었고 己卯士禍로 趙光祖를 除去한 것이 크나큰 罪라고 直言하다가 留春驛에 杖配되었다. 李荇, 朴祥, 趙光祖, 金安國, 李자, 韓忠 등과 친교 하였으며 이중 朴祥은 忠州 牧使로 있을 적에 그를 위해서 식량을 공급하였다 한다. 己卯士禍 뒤 金安國과 함께 後進養成에 지대한 공을 남졌다. 死後에 八峰書院에 祭亨 되었다. 그의 저술은 乙巳士禍 뒤에 몰수되어서 본서만이 남았으며, 宋尤庵이 쓴 神道 碑文과 慕齋 金安國이 쓴 行狀도 모두 전하지 않는다. 卷{3}의 文 9편을 除하고는 모 두 五言, 또는 七言詩이며 卷{4}는 附錄이다. 序文 다음에 著者의 世系圖가 달려 있다 . 卷{1}에 久絶鄕信人來喜而賦之 등 16수의 五言古詩와 和洪君(洪彦邦)風雨書懷 등 4 수의 五言排律, 謝尹上舍(尹友衡)見訪 등 五言律詩 44수, 題閔中樞(閔泮)所藏畵四首 등 19수가 각각 실렸으며 卷{2}에 應製詠落霞 등 七言絶句 123수, 卷{3}엔 送李年비仲 赴永川 등 七言古詩 7수와 次盧相國(盧思愼)孝思亭詩帖韻四首 등 七言律詩 5수와 9편 의 文이 각각 실렸다. 文은 姜而수第年會序 등 4편의 序, 1편의 說, 參判權公(景祐)配 貞夫人魚氏墓碣銘 등 3편의 銘·表와 1편의 行狀 등이 각각 실렸다. 卷{4}는 모두 附 錄으로, 己卯名賢錄, 救趙靜庵筵奏, 湖堂被選錄, 經筵進講官抄選錄 등을 비롯하여 저 자를 위한 書院의 祭享祝文, 致祭文, 神道碑銘, 謚狀등과 家先記聞十條 및 知友諸賢贈 酬詩 8편이 각각 실렸다. 이 贈酬詩의 저자를 보면 虛庵 鄭希良, 容齋 李荇, 慕齋 金 安國, 訥齋 朴祥, 沖庵 金淨, 企齋 申光漢, 灌圃 魚得江, 漁村 沈彦光 등이다. 「附家 先記聞」은 金光岳의 집에 家傳되어 오는 金世弼에 대힌 이야기를 기록한 것으로 己卯 士禍 뒤의 일과 生長時의 사실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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