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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질은 6권2책임
**序: 上之十九年(1882)...李敦禹
跋: 己卯(1879)...李鶴來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제(鄭梯)의 본관은 동래. 자는 가승(可升), 호는 남창(南窓)이며, 1689년(숙종 15) 8월 2일에 영천시 명산동(鳴山洞)에서 태어나 1765년(영조 41) 1월 4일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양보(鄭良輔)이며, 증조는 정이호(鄭以護), 조부는 정세무(鄭世武)이다. 아버지는 정사제(鄭思齊)이며, 어머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로 조사급(曺士伋)의 딸이다.
첫째부인은 경주 이씨(慶州李氏)로 이세해(李世楷)의 딸이며, 둘째부인은 경주 최씨(慶州崔氏)로 최억기(崔億基)의 딸이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니, 아들 정주진(鄭周震)·정주흥(鄭周興)·정주채(鄭周采)·정주학(鄭周學)인데, 정주진과 정주채는 출계하였으며, 사위는 조정구(趙廷龜)이다.
정제는 천성이 효우(孝友)하여 7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예를 행함이 성인과 같았다. 8세에 벌써 『사략(史略)』을 읽었으며, 14세에 횡계서당(橫溪書堂)에 취학하여 정만양(鄭萬陽)과 정규양(鄭葵陽) 문하에서 매산(梅山) 정중기(鄭重器)와 명고(鳴皐) 정간(鄭榦) 등과 강마하여 경전의 깊은 뜻을 익혔다.
1728년(영조 4)에 역난(逆亂)이 일어나자 스승과 함께 창의하였으며, 가난하여 사는 집에 마루가 없었는데 곁에 큰 나무가 있어 책상자를 끌고 그늘에 앉아 글을 보고 거두지 아니하여 그 나무를 ‘사음정(四陰亭)’이라 하였다.
또한 낮은 집에 벽 구멍이 밝게 통하였다 하여 스스로 호를 ‘남창(南窓)’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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