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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崇禎四庚申(1860)仲秋日...金學性君 崇禎五庚午(1870)淸和節西河任憲晦序
跋: 時重光赤奮若(辛丑, 1901)臨之下澣德恩宋秉璿書
被傳者 : 李瓊(麗末-鮮初)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호는 관산(鸛山). 성산 이씨(星山李氏)의 시조는 고려 태조 대 개국벽상좌명공신(開國壁上佐命功臣) 이능일(李能一)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능일의 5세손이 이견수(李堅守)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능일의 15세손 이중화(李重華)이다. 참봉(參奉) 벼슬을 한 이중화의 호가 기국(杞菊)·기국옹(杞菊翁)이어서 이중화를 기국공파(杞菊公派) 파조(派祖)라고 한다. 이중화는 성주읍 소비곡(所非谷)[현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시비실]에서 살았고, 뒤에 후손들은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용흥리 연포와 율포,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등지로 이주하여 세거하고 있다.이경(李瓊)[1559~?]은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와 교유하였으며, 경서에 밝고 행실이 단정하였다. 『성산지(星山誌)』와 문중 홈페이지에 의하면, 이경은 임진왜란 때 군자감 봉사(軍資監奉事)를 지냈다고 한다. 군자감은 고려 때 군자시(軍資寺)에서 바뀐 관청으로서 군량미 등 군수품 관리를 맡았다. 군자감 봉사는 종팔품 벼슬이었다. 이경의 증조할아버지인 이중화가 종구품인 참봉이었기에 이경에게 종팔품 정도의 직이 제수되었다고 추측된다. 행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성주가 낳은 영남학파의 대표 학자인 정구가 무리포(茂理浦)에서 여러 유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찾아온 이경을 보고 학문에 독실한 선비를 늦게 만나게 되어 애석하다고 할 정도로 학문의 경지가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