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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崇禎二己巳(1629)...李潤雨
**조선(朝鮮) 시대(時代)의 문신(文臣)ㆍ학자(學者)(1543~1620). 자(字)는 도가(道可). 호(號)는 한강(寒岡). 시호(諡號)는 문목(文穆). 백매원(百梅園)을 세워 유생(儒生)들을 가르쳤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는 의병(義兵)을 일으켜 싸웠다. 여러 학문(學問)에 정통(精通)하였고, 예학(禮學)에 뛰어났으며, 글씨도 잘 썼다. 저서(著書)에 ≪심경발휘(心經發揮)≫,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 ≪성현풍범(聖賢風範)≫ 따위가 있다.
**성주 출신 학자인 정구가 다섯 가지 상복(喪服)에 관한 연혁도(沿革圖)를 그린 예학서.
『오복연혁도(五服沿革圖)』는 정구가 주희(朱熹)와 그의 제자 황간(黃幹)과 양복(楊復)에 의해 편찬된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의 『의례상복도식(儀禮喪服圖式)·오복도(五服圖)』를 참고하여 참최(斬衰), 제최(齊衰), 대공(大功), 소공(小功), 시마(緦麻)의 다섯 가지 상복(喪服)에 관한 역대 연혁을 정리하고 제자인 이윤우(李潤雨)[1569~1634]가 이를 표로 그려 20첩(帖) 25목(目)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정구(鄭逑)[1543~1620]는 자가 도가(道可), 호가 한강(寒岡)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하에 출입했고, 1573년 예빈시 참봉을 거쳐 창녕현감, 형조참판, 안동부사,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성주, 대구 등에서 강학활동을 하여 많은 제자를 길렀으며 유종(儒宗)으로 추앙받았다. 사후 영의정으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문목(文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