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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21.5*31.5센치
보내1층14상1
**序: 上之十一年乙巳(1845)...柳致明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초명은 집(集), 자는 휘조(輝祖), 호는 지애(芝厓).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의 8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정언제(鄭彦濟)이고, 할아버지는 정동리(鄭東里)이다.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정지복(鄭之復)이며,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金氏) 김경헌(金景瀗)의 딸이다. 부인은 순천 박씨(順天朴氏)로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후손이자, 박성부(朴聖溥)의 딸이다.
정위(鄭煒)[1740~1811]는 1740년(영조 16)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에서 태어났다. 통경(通經)과 행의(行誼)를 이유로 조정에서 누차 관직을 제수했으나, 병을 핑계로 대부분 나아가지 않았다. 1797년(정조 21)에 온릉 참봉(溫陵參奉)에 제수되었을 때는 임금의 명을 계속 거부할 수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봉직했다가, 1개월여 뒤에 바로 고향 성주로 되돌아왔다. 이후 정구가 건립했던 숙야재(夙夜齋)를 중건한 뒤, 독서와 강학으로 평생을 일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