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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刊記: 崇禎紀元後四庚午(1810)九月日芳谷開刊
序: 崇禎紀元後四戊辰(1868)...柳厚祚
跋: 歲庚午(1870)七月有日...[姜]泳欽
**강대수 (姜大遂 1591∼1658(선조 24∼효종 9)) 조선 중기 문신. 자는 면재(勉哉)·학안(學顔), 호는 춘간(春磵)·한사(寒沙)·정와(靜窩). 본관은 진주(晉州). 사간(司諫) 익문(翼文)의 아들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610년(광해군 2) 생원·진사시를 거쳐 1612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설서(說書)·사서(司書)를 역임하였고, 이듬해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다. 1614년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자 정온(鄭蘊)이 간언하다가 유배되었는데, 정온을 구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평소에 반목하던 정인홍(鄭仁弘)의 모함으로 삭직당하고 회양(淮陽)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났고 그 뒤 호조좌랑(戶曹佐郎)·예조정랑(禮曹正郞)·홍문관 부수찬(弘文館副修撰) 겸 경연검토관(經筵檢討官)·우승지(右承旨)·병조참의(兵曹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651년 전주부윤(全州府尹)이 되어 1년 동안 지낸 다음, 관직에서 물러나 여러 차례에 걸친 임금의 소명에도 불구하고 관도(官途)에 오르지 않았다. 석천서재(石泉書齋)·이연서원(伊淵書院)·덕곡서원(德谷書院)을 지어 유학자들을 양성했다. 저서로 《한사집(寒沙集, 7권 3책)》이 있다. 합천(陜川)의 도연서원(道淵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