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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동선생문집(別洞先生文集)2책완질 윤상(尹祥)

별동선생문집(別洞先生文集)2책완질 윤상(尹祥)(조선시대 木板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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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조선시대 木板本
모델 30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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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木板本으로 간행된 예천(醴泉)윤씨인 조선 전기의 학자 윤상(尹祥)의 시문집으로 김종직선생의 서문이 있는 별동선생문집(別洞先生文集)2책완질 상태좋으며 파장없음 크기:29.5*19.8센치 **윤상(尹祥)/윤철(尹哲) 1373(공민왕 22)∼1455(단종 3). 본관은 예천(醴泉), 초명은 윤철(尹哲), 자는 실부(實夫), 호는 별동(別洞)이다. 예천군의 향리 윤선(尹善)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과거를 통하여 양반신분이 되었다. 조선 전기의 학자 · 문신으로 태조 1년(1392)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생원시에도 합격하였으며, 1396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선산(善山) · 안동(安東) · 상주(尙州) · 한성(漢城) 서부 등지의 교수관(敎授官)을 거쳐 예조 정랑이 되어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성균관 사예가 되었다. 노부모를 위하여 외직(外職)을 청하여 황간 · 영천(榮川) · 대구 등지의 수령을 역임한 후 사성(司成) · 대사성(大司成)이 되었다. 세종 30년(1488) 예문관 제학으로서 성균관 박사가 되어 성균관에 입학한 세손(世孫 : 후의 단종)에게 학문을 강의하였다. 문종 초에 치사(致仕)하고 고향에 돌아가니 임금이 식궤(食饋)를 내렸는데, 치사하는 재상에게 궤물(饋物)을 내리는 제도가 이에서 비롯되었다.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치다가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성리학에 밝은 조용(趙庸)이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 예천에 유배되자 조말생(趙末生) · 배강(裵?) 등과 함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조용을 통하여 정몽주의 학통을 이어 받았으며, 성균관의 교육에 오랫동안 종사함으로써 조선 초기의 성리학을 진작, 유지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개별적으로는 김숙자(金叔滋)에게 《주역(周易)》을 가르쳐 정몽주 계열의 도통(道統)에 크게 기여하였다. 경학(經學)에 밝았으며 문장에도 능하였다. 예천의 향사(鄕祠)에 제향(祭享)되었으며, 저서로는 《별동집(別洞集)》이 있다. **尹祥(1373∼1455)의 詩文遺集. 그의 初名은 哲, 字는 實夫, 號는 別洞, 醴泉尹氏인 善의 아들이다. 1393년(太祖 2)에 進士試와 계속 生員試·文科에 合格하여 善山·安東 ·尙州·西部敎授官을 거쳐 成均館 直講·司藝·司成·大司成 등 成均敎官職을 전후 5 0年 동안 역임하였다. 그 동안 그는 많은 弟子를 양성하였으며 1448년(世宗 30)에는 藝文館 提學으로서 世孫(端宗)의 成均館 入學禮를 擧行할 때 博士가 된 바 있었다. 이 와 같이 그는 일생을 교육계에서 활약하여 學統을 陽村 權近으로부터 金宗直, 金宏弼, 鄭汝昌에게 전하고 그가 高齡으로서 隱退·歸鄕하였을 때 文宗은 그에게 食物을 下賜 하였다(退老宰相에게 食物을 주는 制度는 이 때부터 생겼다 한다). 尹祥의 榮達은 오 직 그의 끈기있는 노력의 결과였으며 그가 일개 郡吏로서 一代의 文章大官이 되었던 것은 고려말까지의 鄕吏의 兩班化를 설명해 주는 좋은 경우이다. 醴泉 尹氏는 마지막 으로 양반화한 家門이고 그 계기가 尹祥에게 있었다. 따라서 그의 祖上 三代의 追贈도 尹祥의 顯達 때문이었다. 尹祥은 文章에 능할 뿐아니라 統術에도 通達하였다. 尹祥은 陽村 權近의 弟子였으므로 文章을 重視하는 풍이 있었다. 그의 文章은 平易簡潔하였으 며 그러한 文章은 그의 풍부한 經學 지식에서 우러나왔다. 그러나 尹祥의 詩文은 旋作 旋棄하여 별로 모아져 있지 않았던 것을 그의 아들 軍威縣監 尹秀殷이 逸稿를 收拾하 여 遺集一冊을 만들고 그의 同年進士인 金宗直에게 序文을 부탁하였다. 이것이 別洞集 의 初刊本이다. 그 후 本集은 1745년(英祖 21)에 10代孫 三徵 등이 再印刊하게 되었다 . 本集은 이때의 板本이 아닌가 추측된다. 卷頭에 1487년(成宗 18)에 쓴 金宗直의 序 文이 있고 그 다음에는 別洞先生世系之圖(이에 의해 醴泉 尹氏의 家門이 尹祥에 의하 여 일어난 것을 곧 알 수 있다.), 目錄이 있다. {卷1}:賦1首(夢金尺賦), 五言節句 13 首, 五言律 7首, 七言絶句 37首, 七言律 33首, 表箋 12首(請傳位表, 賀正朝表, 謝賜諸 佛名稱歌曲方物表, 禮曹請建箕子祠堂碑箋, 兵曹請於山河險阻皆置關防以嚴守禦箋 등). {卷2}:疏·陳言 4首(成均館闢佛疏, 李澹嫡妾分揀陳言), 書 1首(黃澗與琴永同書), 序( 碧松亭松陰唱和詩序), 記 2首(成均館賜준뢰記, 醴泉客舍東軒重創記), 祭祝文 4首, 策 文 1首, 拾遺 2首(義興開刊鄕藥救急方跋, 刻杜律跋), 歌謠 6首(甫州鄕校歌謠 등). 「 成均館闢佛疏」는 世宗이 末年에 佛敎를 酷信한 데 대한 儒學者로서의 反對上疏이다. 陳言은 旱災를 당하여 國王에게 國政에 관한 시정책을 개진한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貢法과 築城의 二事를 지적하고 있다(年分九等, 田分六等制反對). 「李澹嫡妾分揀陳言 」은 士大夫의 二三妻 率居와 그 子孫들에 대한 土地와 奴婢相續의 不可함을 주장한 것이다. 策文에 나타나는 것은 倫理的 側面을 강조한 내용과 闢佛에 관한 내용이 있다 . 歌謠도 역시 儒敎的 道德觀을 鄕校生들에게 周知시키려는 의도에서 지은 것이다. { 卷3}:附錄으로 年譜와 墓碣銘(林霽光撰), 聞見錄, 奉安文 등이 있다. 聞見錄은 後世人 들의 尹祥에 대한 評으로 그 典據로서 ≪筆苑雜記≫(徐居正), ≪용齋叢話≫(成俔), ≪ 척言≫(金正國), ≪海東名臣錄≫, ≪彛尊錄≫(金宗直), ≪退溪集≫(李滉) 등이 있다. 卷末에는 李光庭의 後敍가 있다. 本集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15세기 교육사연구 에 도움되는 자료를 포함하고 있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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