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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황유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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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옛날물건 댓글 0건 조회 202회 작성일 18-04-1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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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엽 [1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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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望鄕)을 그리는 화가 황유엽


김인환 (미술평론가)


황유엽(黃騎準)을 포함한 그의 세대들, 특히 그가 오랫동안 몸담아 온 "구상전"(具象展) 그룹의 동세대화가들의 작품세계에서 건져올릴 수 있는 몇가지 공통된 특질이 있다. 소재면에서 보면 우리 전래의 토속취(土俗趣)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것, 기법면에서 보면 묘사 적인 사실화법을 결코 파기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거기서 한결 내면적으로 그려진 세계를 찾아, 즉 고착된 자연주의적 대상의 세계를 떨쳐버리고 변형된 형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 그래서 한때 이러한 양식을 "반추상"이라는 말로 현하기도 했었다.


화가 황유엽이 살아온 시대의 정황과 체험연륜은 작품 세계와 무관할 수 없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중섭(李仲燮), 박수근(朴壽根) 등과 거의 연대적 맥을 같이 하면서, 또는 동도(同道)의 길에 들어선 동업자로서 생활의 애환을 같이 했던 세대인 화가의 한 사람이다. 또 한가지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은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失鄕民)의 "망향화가"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북 출신 화가의 한사람인 황유엽은 6·25 동란의 와중에 남행길에 들어섰다. 전란 중에 가족들을 고스란히 북에 남겨두고 혈혈단신 두 형제만의 탈출이었다.

모든 월남자들이 겪은 고행은 우리 민족 모두의 아픔이며 슬픔이다. 전쟁을 통한 민족대이동의 대열에서 남한의 몇 사상적 이상주의자들은 북행길을 택했을 것이고, 북한에서 사상적 "반동"(反動)으로 몰린 지주계급과 그 후예들, 혹은 일제에 협조했던 사람들, 어정정하게 이데올로기에 시달리다가 남으로 넘어온 사람들도 많다. 전쟁이 끝난지 40여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이 치유될 수 없는 상처는 자의든 타의든 거기 참여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의식 가운데 커다란 자국으로 남아 있다.

북에서 넘어온 화가들, 6·25 동란 중에 남에서 맞이한 이북화가로서 황유엽의 세대에 속할 수 있는 연배로는 함경도 땅에서 교편을 잡았던 이중섭, 강원도에 은거하던 한묵(韓默), 전쟁 중에 벽화관계의 일로 징집되어 평양에서 금강산 부근으로 옮겨와 있던 장리석(張利錫), 최영림(崔英林) 등이 있고 황유엽은 그의 향리인 평양에서 전쟁을 맞고 월남하였다. 1967년에 창립된 구상전 그룹은 그 창립취지야 어땠건 간에 한동안 회원의 출신분포는 서북지역 (평안도, 황해도)이 주축이 되고 있다. 일종의 "고향의식"이 공감대로 작용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 모임으로 출발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성환(朴咸煥), 박창돈(朴昌敦), 박항섭(朴恒燮), 장리석, 최영림, 흥종명(洪鍾), 황유엽 등이 요컨대 이북출신 멤버들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關西)지방은 일찍부터 대륙을 통하여 근대적 서구 구문물이 유입되었던 문화의 요충지로서 한편으로는 일본을 통한 근대의식의 개안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동경미술학교 출신으로 서양화 도입기에 한때나마 명성을 날렸던 서양화가 김관호는 평양에 귀향한 후에 별다른 활동상을 보이지는 았았다. 역시 서양화가인 이종우(李鍾禹), 박영선(朴泳善), 김원(金源), 윤중식(尹仲植), 송혜수(宋惠秀), 황염수(黃廉秀), 박고석(朴古石) 등이 이 지역(관서지방)에 연고를 두고 있으나 거의 대부분 일찌감치 고향을 등지고 타관에서 생활의 발판을 쌓아왔다.

황유엽(黃談嬅)을 포함한 그의 세대들, 특히 그가 오랫동안 몸담아 온 "구상전"(具象展) 그룹의 동세대 화가들의 작품세계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질이 있다. 소재면에서 보면 우리 전래의 토속취(土俗趣)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것, 기법면에서 보면 묘사 적인 사실화법을 결코 파기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거기서 한결 내면적으로 열려진 세계를 찾아, 즉 고착된 자연주의적 대상의 세계를 떨쳐버리고 변형된 형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 그래서 한때 이러한 양식을 "반추상"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었다. 

화가 황유엽이 살아온 시대의 정황과 체험연륜은 작품 세계와 무관할 수 없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중섭(李仲燮), 박수근(朴壽複) 등과 거의 연 대적 맥을 같이 하면서, 또는 동도(同道)의 길에 들어선 동업자로서 생활의 애환을 같이 했던 세대인 화가의 한 사람이다. 또 한가지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은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失鄕民)의 "망향화가"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북 출신 화가의 한사람인 황유엽은 6·25 동란의 와중에 남행길에 들어 섰다. 전란 중에 가족들을 고스란히 북에 남겨두고 혈혈단신 두 형제만의 탈출이었다.모든 월남자들이 겪은 고행은 우리 민족 모두의 아픔이며 슬픔이다. 전쟁을 통한 민족대이동의 대열에서 남한의 몇 사상적 이상주의자들은 북행 길을 택했을 것이고, 북한에서 사상적 "반동"(反動)으로 몰린 지주계급과 그 후예들, 혹은 일제에 협조했던 사람들, 어정정하게 이데올로기에 시달리다가 남으로 넘어온 사람들도 많다. 전쟁이 끝난지 40여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이 치유될 수 없는 상처는 자의든 타의든 거기 참여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의식 가운데 커다란 자국으로 남아 있다. 

북에서 넘어온 화가들, 6·25 동란 중에 남에서 맞이한 이북화가로서 황유 엽의 세대에 속할 수 있는 연배로는 함경도 땅에서 교편을 잡았던 이중섭, 강원도에 은거하던 한묵(韓默), 전쟁 중에 벽화관계의 일로 징집되어 평양에서 금강산 부근으로 옮겨와 있던 장리석(張利錫), 최영림(崔英林) 등이 있고 황유엽은 그의 향리인 평양에서 전쟁을 맞고 월남하였다. 1967년에 창립된 구상전 그룹은 그 창립취지야 어쨋건 간에 한동안 회원의 출신분포는 서북지역 (평안도, 황해도)이 주축이 되고 있다. 일종의 "고향의식"이 공감대로 작용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 모임으로 출발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성환 (朴成煥), 박창돈(朴昌敦), 박항섭(朴恒燮), 장리석, 최영림, 홍종명(洪鍾 鳴j, 황유엽 등이 요컨대 이북출신 멤버들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關西)지방은 일찍부터 대륙을 통하여 근대적 서 구문물이 유입되었던 문화의 요충지로서 한편으로는 일본을 통한 근대의식의 개안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동경미술학교 출신으로 서양화 도입기에 한때나마 명성을 날렸던 서양화가 김관호는 평양에 귀향한 후에 별다른 활동상을 보이지 않는다. 역시 선양화가인 이종우(李鍾禹), 박영선(朴泳善), 김원(金源), 윤중식(尹仲植), 송혜수(宋惠秀), 황염수(黃廉秀), 박고석(朴古石) 등이 이 지역(관서지방)에 연고를 두고 있으나 거의 대부분 일찌감치 고향을 등지고 타관에서 생활의 발판을 쌓아왔다.

해방 전 잠시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던 조선미술전람회(鮮展)에 출품하기도 했던 황유엽의 작품활동은 해방과 더불어 평양에서 결성된 서양화그룹 "주호전"(珠壹展)을 통한 발표가 고작이었다. 당시 이 모임에 몸담았던 화가로는 박수근, 장리석, 최영림, 홍건표 (洪建約)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동족상잔의 전쟁 회오리에 말려 남행을 결행 할 수밖에 없었던 민족수난사의 현장에서 화가는 남쪽으로 와서도 개인의 수모와 불이익을 겪어야했던 우여곡절 끝에 오로지 그림에 대한 집념 하나만으로 버텨왔던 것이다. 예술이라는 삶의 지표가 없었던들 그의 오늘이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화가 황유엽의 월남 이후의 작품활동은 구상전이 결성되기 이전 창작미협전, 신상회전에 관여한 외에 60년대 초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國展)의 출품을 계기로 동 추천작가, 초대작가의 서열에 오른다. 그의 실질적인 작품활동은 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유엽의 작품에는 "소"(牛)가 자주 등장한다. 원초의 인간도 소를 그렸다. 원초의 인간, 즉 선사 구석기시대 후기의 원시인류가 동굴의 벽면에 그린 소 그림은 단순한 먹이의 포획을 위한 주술(鳴術)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유엽이 그리는 소는 그와는 의미가 다르다. 오랜 농경사회를 거치면서 특히 한국인에게는 소라고 하는 친근한 동반자, 주인을 위해 묵묵히 봉사하는 추종자가 생겼다. 한국의 소, 황소는 무엇보다도 한국인의 인성을 왜나 닮은 한국적 체질의 상징성을 고루 갖춘 우리 모두의 벗이다.

소그림은 곧 지금은 자꾸만 사라져가는 고향의 정서와 다름 아니다. 그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몸매, 강인성과 과묵함, 온갖 수모를 감내해 온 질긴 근성과 표정깊은 슬픈 큰 눈망울, 그러면서도 몸속 깊이 어디서 솟구쳐 나는지 모를 장대한 힘(에너지)의 묶음으로 자신을 감싸며 우리의 농가를 지켜온 수문장이다. 소를 즐겨 그리는 화가 황유엽은 그래서인지 화가의 인품 가운데서도 소처럼 텁텁하고 강인한 일면이 풍겨나온다.

소를 테마로 한 이 화가의 그림 어느 것이나 "망향"을 전제로 한 고향의식이 그 근저에 깔려 있다. 화가는 소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 아련한 고향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황소의 등허리에 얹혀가는 목동들의 모습을 통해서, 혹은 여인과의 대비를 통해서도 나타내 보인다. 단오같은 명절날에 시골 씨름판에서 패자(獨者)인 주인을 기다리는 "현상붙은 소"도 있다. 확대된 소의 초상은 더욱 감동적이다.

화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과 소는 등가치로 다뤄지며 서로의 따스한 정념으로 묶여진 친화관계로 결속되어지고 있다. 이 둘의 관계는 결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받는 자의 종속관계는 아닌 것이다. 이들 형상을 둘러싼 배경은 황토빛과 붉은 땅의 기조색으로 온통 덮여져서 한결 토속적인 분위기를 돋운다. 화가가 성장시절에 본 고향 흙도 그렇게 붉었었다. 화가는 붉은색에 대한 나름대로의 짙은 애착과 어떤 믿음을 갖고 있다.

둔중하고 질박한 굵은 검정윤곽선으로 형상지어지는 형태들은 다분히 표현적이며 단순화되어 있다. 화면은 다소 음산한듯 어두우면서도 일렁이는 황금빛 광선으로 윤택하다. 밝음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도 놓칠 수 없는 요소다. 닭장이나 원두막, 소와 정담을 나누는 여인, 피리 부는 목동, 농가의 단오절 등이 화면에 자주 오르내리는 주제다. 어느 것이나 고향을 잃은 나그네의 비애와 망향의 우수가 깔린 주제로써 오로지 지역에 의존하여 재생된 환기력으로 그린 고향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들과 며느리까지 화가로서 예술 가족을 거느린 화가 황유엽은 가정에서는 그지없이 자상한 가장이기도 하다. 몇년 전에 이승을 하직한 부인에 대한 애틋한 추념을 간직하고 고독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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