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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윤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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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옛날물건 댓글 0건 조회 237회 작성일 18-04-1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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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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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년도 : 1936.10.14 

출생지 : 서울 


지속의 개념에서 결정의 개념으로


오광수(미술평론가, 환기미술관 관장)


작가와 시대와의 관계는 두 가지 유형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시대적 미의식과 전혀 동떨어진 개인단위로서의 작가상이 있고. 항상 시대적 미의식과 상대적인 균형감각에서 자신의 위상을 모색해 가는 작가상이 있다. 우리미술의 경우, 예컨대 박수근. 장욱진과 같은 작가는 전자를 대표해주는 유형인 반면, 몇몇 현대 미술운동에 참여하였던 세대의 작가들은 후자의 경우에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시대적 미의식과 상대적인 균형감각을 유지한다는 것은 시대와 자신이라는 두 개의 축의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경우의 균형감각은 시대적 미의식과 더불어 자신의 고유 한 조형세계를 적절히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균형감 각이 잡히지 않을 때 유행의 물결에 자신을 함몰시키는 것이며. 균형감각이 견지되지 못할 때 고루한 자기칩거가 시작될 수 있다. 50년대와 60년대를 통해 현대미술운동에 앞장섰던 많은 작가들 가운데 이 같은 균형감각이 상실된 경우를 자주 목격하는 터이다. 특히 우리의 현대미술의 전개에서 이 같은 부침은 더욱 극심한 양상으로 기록되어지기도 한다.

자신과 시대와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언제나 치열한 의식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여기엔 언제나 긴장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긴장이야말로 자신을 나아가게 하는 구체적인 모티베이션에 다름 아니다.

尹明老는 60년대 초에 등장한 세대의 작가이다. 이른바 1960년대 미협의 창립 멤버로서 출발하였다. 그와 같이 현대미술운동에 뛰어들었던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사라져갔다. 이제 60년 대 미협 멤버도 활동을 지속하는 경우는 겨우 몇명에 불과하다. 60년 미협 멤버 뿐아니라 그보다 앞선 세대의 현대미협 멤버들 가운데서 이제껏 활동하고 있는 경우도 극소수에 머물고 있다. 50년대와 60년대를 통틀어서 그 숫자는 손꼽을 정도이다.

왜 그 많은 작가들이 현장에서 사라져 갔는가. 저마다의 이유와 그 나름의 조건들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시대적 미의식과의 균형감각의 상실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균형이 깨어질 때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시대에 떠밀려 가거나 시대와 등지는 사태가 그것이다. 시대에 떠밀려가지 않으면서 동시에 시대와 등지지 않는 일정한 거리 속에 자신을 가누어 간다는 것이야말로 균형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감각을 지속해온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尹明老는 그 많지 않은 작가중의 한 사람이다.

멀리 소급할 필요도 없이 80년대 후반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화 편력을 점검해 보자 약 10년간의 편차 속에서 그가 추구해온 작화의 내용은 크게 세 개의 단위로 분류되어진 다. (얼레짓) (얼레짓 이후) (익명의 땅)이라는 일련의 주제가 그것이다. 이 같은 주제는 그 특유의 체계를 지니는 시적 은유물이지만 이들 일련의 작품들이 시대의 미의식과 적절한 균형감각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얼레짓)과 (얼레 짓 이후)에로 연결되는 기본적인 토온은 모노톤이었으며 일정한 붓질의 반복성에의 한 화면의 균질을 시도해 보인 것이었다. 이 같은 화면 구조는 이른바 모더니즘의 진영에서 주장되었던 고유한 정서와 조형의 발견이라는 차원과 일치된 것이었다. 자신의 독자 한 조형의 세계를 추구하면서 그것을 언제나 시대적 미의식과의 견인을 유지해 주었던 그의 작가적 위상이 이로서 한결 두드러지게 확인되어지고 있다.

그가 최근 전개해 보이고 있는 것이 (익명의 땅)시리즈다. (익명의 땅)은 (얼레짓 이후)에 바로 이어지는 작품들로 하나의 정신적 맥락을 유지해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대담한 표현성이라든가 제스춰는 (얼레짓)과 (얼레짓 이후)와 크게 비교되는 점으로 다분히 모색의 기운을 접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화면의 스케일은 엄청나게 커졌으며 화면을 누비는 운필의 속도감은 능히 화면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더 없이 정한한 문인화의 세계를 연상 시켰던 (얼레짓)시리즈에서 보였던 내밀한 안의 공간은 일시에 밖으로 분출되어 나오는 형국을 보였다. 수단이 표현을 앞질렀다. 뿜어나오는 내면의 열기는 스스로를 가둘 수 없게 하였다. 그는 이 일련의 작품들로 개인전(호암갤러리 91. 선재미술관92)을 가졌다. 그리고 뒤이어 갖는 것이 이번 전시다.


그가 최근 지속해오고 있는 작업의 내역은 일종의 연작개념이 다 (얼레짓)이 그렇고 (얼레짓 이후)가 그랬으며, 현재하고 있는 (익명의 땅) 역시 그렇다. 연작이란. 일종의 작품의 군집을 의미한다 일정한 문맥에 의해 전체로 묶어지는 작품군을 가리킨다. 이 경우에 있어 개별은 전체에 묻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얼레짓) 몇 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얼레짓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지칭되는 것이다. 특히 연작 개념은 현대미술에 두드러진 작품현상의 하나로 꼽힌다. 예를 든다면. 드라끄로와의 (자유의 여신) 또는 제리꼬의 (메듀스호의 뗏목)은 단일한 작품이다. 그것은 또한 드라끄와를, 제리꼬를 말할 때 그들의 대표작으로 으례 떠올리는 개별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잔느에 와서 (수욕도)라든지 (생빅또알산)은 개별적인 단위로 묶이는 작품이 아니다 어느 (수욕도)라도 세잔느의 수욕도 시리중의 하나이고, (생빅또알산)도 생빅또알 작품군 속의 하나이다 이 경우 (수욕도)와 (생빅또알산)은 언제나 전체로서의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전후에 오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폴록의 작품은 일련번호로 이어진다. 그의 전체작품이 하나의 시리즈란 띠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폴록의 어떤 작품을 보았다는 말보다 그저 폴록을 보았다고 한다. 그저 저것은 폴록이다. 저것은 드쿠닝이다 할 뿐이다.

尹明老의 일련의 시리즈도 한 시기에 걸친 같은 호흡의 연장이란 각도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된다. (익명의 땅)은 그가 최근 몇년내 지속해오고 있는 같은 호흡의 작품군임을 가리킨다. 그런데, 근작 앞에서 작가는 이렇게 푸념처럼 토로한 적이 있다. 겸재(謙齋)하면 (인왕제색도)하듯이 자신도 그런 대표작을 남겨야 할 때가 아닌가 하고. 이 말은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지는 연작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단위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지속의 개념에서 결정의 개념으로 자신의 작업을 고양시 키려는 의욕의 표명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이런 각도에서. 그의 근작(익명의 땅)은 앞선 시리즈(익명의 땅)과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가지 않으면 안되게 한다.


지속의 경우, 개별성에서 찾아지는 완성도는 빈약해질 수 있지만, 결정의 경우. 작품 하나하나가 완성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근작(익명의 땅)은 분명히 과거의 익명의 땅 연장에 놓여있긴 하나 작품에 임하는 작가의 태도엔 이미 개별적 작품으로서의 밀도에 경주하고 있는 변모된 기운을 접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근작 (익명의 땅)은 시리즈로서 보다 독립된 하나 하나의 작품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

또 그러한 결정이 일종의 종합으로서의 체계를 띈다는 흥미로 운 사실도 드러내고 있는데, 그의 근작이 10년내의 일련의 작품 을 종합하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음에서 이다. 근작 앞에서 우리 는 (얼레짓)과 (얼레짓 이후) 그리고 초기의 (익명의 땅)을 하나로 연결하는 거대한 종합의 띠가 바탕을 관류하고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또 이들 작품을 연계하는 호흡의 내밀한 정서를 하나로 묶는 놀라운 체온을 실감하기도 한다.

고담한 문인화의 세계가 있는가 하면, 거대한 산수를 앞에 하고 감격해하는 실경산수화파의 격정이 있다. 기괴하고 웅장한 기암절벽이 이루어지는가 하면 깊은 계곡의 맑은 물소리에 귀기울이게 한다. 브라쉬 워크는 약려하고 안료의 층은 숨쉬는 내면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때로 격정에 사로잡히다가 깊은 정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표현의 명암이 어우러진다. 그것은 구체적인 산수를 앞에 한 감격의 표현일 수도 있고 흥중에 일어나는 내면의 풍경일 수도 있다 격정에 사로잡혔던 초기의 익명의 땅에 비교해 보면, 이들 근작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적절한 자기통어 이다. 어느 쪽에 경사됨이 없이 균형감각을 유지해 주는 그의 뛰어난 작화태도를 선명히 드러내 보인다. 그가 염원해 마지않는 대표적인 작품들은 이들 작품 속에서 조만간 찾아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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