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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변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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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옛날물건 댓글 0건 조회 178회 작성일 18-04-19 00:37

본문

변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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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년도 : 1926.7.28  

출생지 : 대구 


변종하 화백의 예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내용적인 측면과 기법적인 측면이다. 어떤 화가의 작품이든 내용과 기법을 떠난 것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면 변종하 화백의 예술을 이야기하는데 굳이 이점을 부각시킨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이 점을 강조하는 내면에는 보편성으로써의 내용과 기법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변종하 화백만이 지니고 있는 내용과 기법으로써의 특수성을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특수성이란 고만이 가지고 있는 독자한 면모와 속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것은 변종하를 변종하답게 하는 단면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변종하 화백의 예술을 연대기적인 측면에서 점검한다면 "65년을 경계로 한 전후로 크게 나눠볼 수 있고, 전기에 있어서도 서울시대와 파리시대로 다시 세분화할 수 있으며, 후기 역시 "60년대 후반과 "70년대 그리고 투병시기인 "80년대 후반 이후로 세분해 볼 수 있다. 

"50년대에 이르는 화력이란 그 나름으로 변화와 추이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크게 단면화해 본 연대기로 보아서도 저으기 풍부한 변화적 내역을 살피기에 충분하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변종하 화백만큼 자기세계라는 방향 속에 자적해 왔고 일관해 온 작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예술가의 타입을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해 본다면, 자기세계를 부단히 심화시켜 가는 타입과 시대에 맞서 자기세계를 적절히 확대해 가는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보다 자신에 충실한 편이라 할 수 있고 동시에 체질적인 면모가 강한 작가에서 찾을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는 시대적인 미의식에 편승, 실험적 의욕으로 자신을 투자해 가는 작가로서 그만큼 변화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변종하 화백은 많지 않은 전자의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만큼 각 시대에 따른 변화의 내역을 통해 그의 예술을 살핀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 같다. 단편의 집적을 통해 전체에 이르기보다 언제나 전체라는 문맥에서 그의 작가적 면모를 떠올릴 수 있겠기 때문이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변종하 화백의 예술을 접근한다는 것은 내용을 이루는 요소와 그것이 표상하는 독특한 미의식을 동시에 파악해야 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선 양식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가 추구하고 있는 내용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매개로 한 것이다. 이미지가 이미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매개로써 등장한다는 데서, 일반적인 양식 구분으로써 구상경향과는 그 괴를 같이 하지 않는다.여기서야말로 이미지는 독특한 표상으로써 내용을 지니는 것이 된다. 지금까지 그에게 적용되어 온 설화적 구상주의라는 수식이 반드시 적절한 것은 아니지만 편의적으로 그렇게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그의 근작 가운데는 「서정적 풍경」이란 표제의 작품이 있다. 아니 일군의 근작들이 「서정적 풍경」의 시리즈를 이루고 있다. 이 말을 조금만 바꾸면 설화적 구상이 된다. 

그의 화면을 이루는 요체로써 설화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흔히 설화라고 했을 때 이야기 속의 어떤 내용을 떠올리게 되는데, 변종하 화백의 경우, 설화는 반드시 과거의 이야기로 국한되지 않는다. 때때로 메타포로써의 현실 비판적 요소를 띨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설화적 구상의 경향이 토속적인 내용으로 국한되어지는 경우에 비해 보편성을 띤 내용인 경우가 많다. 이같은 내용적 측면만 본다면, "70년대의 작품들에선 메타포로써 현실 비판적 색채의 우화가 적지 않았으며,"80년대 중반이후 근작에 이르기까지는 시원(始原)의 풍경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보편적 정감에 그 뿌리를 둔 내용이 하나의 맥을 이루고 있는 편이다. 전자의 우화 「돈키호테 이후」는 표제 그대로 단순한 세르반테스의 번안이나 문학의 회화적 변용이 아니라 돈키호테를 계승한 또 다른 돈키호테란 의미를 띠고 있다. 즉 풍자 이후의 풍자, 비판 이후의 비판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경우의 풍자와 비판은 바로 현실풍자와 현실비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이 직설적인 방식이 아니라 대단히 은유적인 채널을 통한 것이어서 쉽게 파악되지 않는 면이 있다. 아무도 그를 시대비판의 작가로서 보려고 하지 않는 점도 이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최근작들은 보다 보편적인 정감에 문맥되어 있는 시원(始原)의 풍경이다. 아담과 이브가 등장하는 태초, 인간과 동물과 식물이 어우러져 있는 태초의 풍경들이다. 어떤 세속적 수식도 초극된 순수한 시원(始原), 강렬한 생명충동이 흘러 넘치는 그러한 세계이다. 그런 점에서 "80년대 이전의 자연대상과는 그 문맥을 달리한다. "종전의 그것들은 회화화의 대상이라는 그 대상성에 얽매어 있었다 말하자면 꽃은 꽃으로의 대상성, 새는 새로서의 대상성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근래의 작품들에선 이 대상성이 부단히 지워지고 있다. 대상성이 지워진다는 것은 또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객관화의 상태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대상이 그 객관적인 상태를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쉽게 이야기한다면 주관화이다. 꽃이나 새가 주관화된다면 의인화로써만 가능하다. 꽃이 내 자신이 되고 새가 나와 관계있는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꽃이나 새의 상태로 머물러서는 안되고 인간과 같은 감정을 지니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순히 인간의 감정을 의탁한 매개물이 아니라 바로 인간감정 그 자체로 표상되어야 한다. 그래서 꽃이나 새는 그것이 꽃이나 새라고 하는 형상을 빌리고 있기는 하나 이미 인간화된 것이 된다. 꽃가지에 두 마리의 새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에 "사랑해요" 역시 같은 말인 "jet"aime"가 긁힌 자국으로 쓰여 있다. 새는 말로써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해요" "쥬뗌"은 사람이 나누는 사랑의 밀어다. 새의 감정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이다." (미술광장 - 1994. 9월호) 

세속적인 모든 수식을 극복한 순수한 평화와 사랑이 점철된 세계는 병고와 싸우면서 지순한 인간감정에 도달되고 있는 작가의 내면풍경이라 할 수 있다. 펄럭이는 망또에 몸을 의지한 채 어딘가를 노려보는 눈망울의 돈키호테는 어느덧 긴 수염의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바뀌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이미지는 때때로 그의 자화상과도 겹쳐진다. 

기법적인 측면에서 변종하 화백의 작품을 접근한다면 화면상에서의 여러 기법적 특징과 화면을 벗어난 매재의 확대란 두 가지 면에서 가능할 것 같다. 화면상에서의 기법적 특징은 요철의 릴리프적 효과에서 먼저 파악되어진다. 판 위에 인체적 도형을 만들고 그 위에 그저 천을 덮고는 채색을 가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이미지는 평면에 그려진 상태로써가 아니라 각인된 상태로 나타나는 특징을 준다. 이는 평면으로써의 회화가 갖는 기법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모색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회화의 평면성 극복은 회화가 아닌 어느 한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작가는 회화를 더욱 회화이게 한다는 의미로써의 리얼리티를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그려진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자체로 남으려는 회화의 자율성의 감회를 뜻하는 것이다. 회화의 자율성은 더욱 풍요로운 표현의 내면을 통해 확인된다. 바탕에 천의 올이 선명히 드러날 정도로 색채를 문지르는가 하면, 짓뭉게듯 덕지덕지 발라 올려진 안료층은 본능적이라고나 할 수 있는 회화성에 대응된다. 어떻게 보면 그의 화면에 떠오르는 일정의 표현방법과 그 지속이야말로 회화의 리얼리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우고, 긁고 뭉게고 슬슬 문지르고 다독거리는 붓자국과 그 붓자국의 행간에 숨쉬고 있는 작가의 내밀한 정감이야말로 극명하게 드러나는 회화의 리얼리티가 아닌가. 

평면을 벗어난 다양한 매재의 확대는 그를 가장 기질적인 작가로서의 내면을 확인시켜 주는 일면이다. 평면의 릴리프화를 통해 드러난 그의 조각적 감각은 도화(陶畵)를 통해 다시 확인되고 있다. 이미 "80년대 초에 도화전을 가진 바 있는 그에게 최근작의 도화가 처음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근작 도화는 그 형태 감각이나 이미지의 설정이 더욱 완숙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어 도화라는 쟝르가 갖는 그 본래적 향방을 뚜렷이 각인시킨 것이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만들어진 도자위에 그림을 시술하는, 단순한 바탕으로써의 도자가 아니라 도자의 형태와 그 속의 이미지가 하나로 태어나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질적인 일면은 드로잉, 꼴라쥬, 판화와 같은 쟝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화가로서의 기질이란 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생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 다양한 매재의 진폭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구하고 있는 내용은 하나의 방향으로써 큰 테두리를 벗어나고 있지 않다. 그가 말하고 있는 서정적 풍경으로써의 설화적 구상이 그것이다. 물론 이 설화적 구상은 시대적 미의식을 뛰어넘는 원초적 서정으로써의 그것이다. 그 원초적 서정 속에서 우리는 이 시대 한 사람의 진정한 서정 시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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