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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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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옛날물건 댓글 0건 조회 148회 작성일 18-04-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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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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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년도 : 1921 

출생지 : 경남 마산 


문신, 그리고 그의 藝術


자끄 도판느(프랑스 미술평론가)


文信은 1923년 1월 16일 한국의 馬山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시절은 아직 식민지 지배하에 벅찬 암담한 가정적 고난의 흔적이 여실했다. 그와 반대로 그의 고향은 그에게 자연에 의한 특수한 곳으로 양면의 보상을 제공해 주었다. 바다와 산 고독의 아이는 그곳에서 지칠줄 모르는 관찰력과 개성, 그리고 작업의 요소인 감동의 根源을 발굴하였다.


14세 때부터 그는 열렬히 소묘를 했으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무런 교육없이 어느 예술의 "派"도 형성되지 않은 도시에서 우연한 만남에 의해 어느날 피카소의 소묘를 실은 일본신문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는 경이감을 금치 못했다. 우선 형태의 분리는 언뜻 보아 한국예술의 때어 놓을 수 없는 대칭법칙을 침범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 끝없는 매료를 느끼게 된다.


16세 즈음, 그는 일제에 의한 문화적인 폐쇄를 벗어날 결정을 했다. 한 친구의 도움으로 일본에 밀입국하여 도꾜의 미술학교에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또는 값비싼 서양미술서적을 구하기 위해 가장 고된 일도 서슴없이 해냈다. 그것은 결국엔 피카소, 그리고 그밖의 화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특히 꾸르베, 고갱, 세잔느에게 애착을 느꼈다.


1945년 한국으로 되돌아 온 후, 수많은 전시회(회화와 부조)를 서울에서 또는 지방 여러 도시(마산·부산·대구 등)에서 가졌다. 그처럼 그는 유명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세에 접어들며 서양을 직접 체험하고픈 억제할 수 없는 의욕과 필연성을 느끼게 되었다. 1961년 빠리에 정착하였고, 이 최초의 생활은 이미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5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새로운 개인전들을 가졌다. 1967년 빠리도 그를 다시 끌어들였고, 1979년까지 머물게 된다.


이와 같이 오랜정착은 회화작품의 否認없이 결정적으로 조각 작품에 심혈을 기울리는 그럼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런 결정적 사건은 오늘날 전설처럼 보인다. 文信, 그리고 그시기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古城의 修飾작업에 참여했다. 문신 자신이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처럼 古城의 修飾작업을 위해 빠리의 북쪽에 빠리의 북쪽에 머물며 나는 그성의 헝가리인 주인과 친분을 나누게 되었다. 그 역시 조각가였으며, 그 외에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던 수영선수였다.


그는 가죽바지를 입고, 자칭 징기스칸의 후예라고 했다. 문신의 작업은 돌을 깨고, 오래된 것을 새 것으로 끼워 넣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일을 하며 나는 당연히 추상 조각이라 할 수 있는 부조 그리고 조각을 위한 구축적인 방법도 창출하게 되었다. 이처럼 나는 조각이란 천업을 발굴하게 되었다. "


문신은 처음부터 큰 나무등치를 그대로 파내는 작업으로 조각가로서의 業에 대항했다. 쇠나무, 자단나무, 그리고 그날까지 그에게 未知였으나, 가장 세련된 작품을 창출해 냈던 흑단 등을 들출 수 있다.


1970년부터 포르-바카레스 국제 조각가 심포지움에서 13미터의 나무타워를 제작하여 세우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형태와 조각"전에 참가했다. 1971년 스위스 발르 국제미술시장, 1973년 프랑스 라 로셀의 현대미술교류전, 1975년 이태리 국제 야외조각전에 참가했으며, 1975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한국에서도 동시에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76년 서울 진화랑, 마산 귀국전) 이시기에 그는 빠리의 큰 살롱전에도 참가했다. 그랑에 존느 도쥬르디전, 살롱 드 메전, 살롱 꽁빠레종전, 훠룸 에 비의 그룹에 활동적으로 협조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의 그의 마지막 개인전은 1979년 오를리 국제 공항에서였다. 한국에 귀국하여 그는 서울의 여러 화랑에서 중요한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개인 혹은 공동의 작품제작은 1980년에서 1988년 서을 뿐 아니라 지방으로 새로운 재료이며, 그에게 유리한 스텐레스 스틸의 여러 종류의 거대한 작품들을 창작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경기의 범위로 "예술의 올림피아드" 당시, 그는 창업을 빛내는 25m높이 "올림픽의 조화"를 제작하여 세웠다. 1989년 그는 빠리 아트센터에서 개최한 "플레쉬 백(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전)"에 참석 했으며, 1990년 동일의 아트센터 초대로 회고전의 대상이 되었다. 동시에 서울의 여러화랑에서 지속적으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1990년에서 1992년까지 대부분의 그의 작품은 자그레브(Muzeejski Proster), 사라예보(Collegium Articium)에서 다페스트(Torteneti Muzeum)로 순회전을 실현했다.


1992년 말 일반인에게 자신의 제단인 "문신미술관"을 그의 고향 마산에 공개할 예정이고, 거의 반세기에 걸쳐 제작한 그의 총괄적 작품을 영구적으로 전시할 계획이다. 현재 빠리 시청 쌍셩 전시실에서까지 회고전을 갖게 되었다. 1980년부터 문신은 마산에 돌아가 생활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92년 6월 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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