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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김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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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옛날물건 댓글 0건 조회 135회 작성일 18-04-1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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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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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명 : 김종학 

출생년도 : 1937.10.11 

출생지 : 평북 선천 


김종학 이야기


金 炯 國 (서울대 환경대학원 원장)


사람이야기는 조심스럽다. 덕담이 자칫 과찬 일변도로만 들리기 쉽고, 거꾸로 한계와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런 미덕이 있다고 반어법(反語法)을 구사하면 미덕은 건성이고 약점만 들먹여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야기같이 재미있는 것도 없다. 실화여서 그렇고, 남 이야기가 내 이야기이기도 한 터이기 때문이다.

화가이야기는 흥미롭고 또 소중하다. 아름다움은 세상사람이 선망하고 추구하는 대상이다. 그 가운데 화가는 아름다움을 찾는 데 앞장 선 선봉장. 그가 우리에게 어떤 아름다움의 경지를 보여줄 지가 지대한 관심거리이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한분은 성공한 정치가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이쪽에서 이 말하고 저쪽에서 저말을 하는 이율배반을 일삼아도 그게 듣는 사람의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경우라 했다. 훌륭한 정치는 예술이라는 등식이 성립 가능하다면, 한 경지를 이루고 있는 화가들의 경우, 서로 배치되어 보통사람에겐 더없는 모순같이 보이는 것들이 무리없는 조화로 보이는 경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악산의 사계를 전심전력으로 그리고 있는 김종학형도 그런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먼저 김형은 전업화가이면서도 전업화가답지 않게 그림을 그린다. 그림만으로 먹고 산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전업화가이다. 선망의 자리인 대학교수로 발령받고도 강단이 창작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육개월만에 집어 치웠다. 오랜 서울생활도 걷어 버리고 설악산 기슭에 칩거한 채 오로지 그림에만 매달려 있다.

전업화가라면 매일 그리고 하루엔 여덟시간 이상 일하는 직장인처럼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제격이다. 이 점을 전업화가의 조건이라 한다면 김형은 전업작가가 아니다. 창작 리듐이 그림을 그릴 지경이 아니면 아예 붓을 놓고 지낸다. 그러다가 그릴만하다는 심기에 이르면 폭풍과 노도처럼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릴 때 그리고 그리지 않을 때의 기복이 심한 것이 김형 작업의 특징이다. 그림이 그려질 때는 생기가 넘치다가 그려지지 않을 때는 기가 푹 죽어지낸다. 그림이 때론 희열의 산물이고, 때론 고통의 산물임은 김형의 표정만 보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김형은 타고난 탐미주의자다. 듬직한 체구에 우선 옷차림이 예사 멋장이가 아니다. 그리고 전통민속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데 일가견을 보여주었던 이력은 세상이 아는 일이다. 김형과 연전에 함께 자주 가던 맥주집 안주인도 출중한 미모가 자랑이었다.

그런 탐미주의자가 한때의 가정 파경으로 새로 아내를 얻은 것을 보고 나는 김형의 다른 면을 보아야 했다. 화가 주변에는 멋과 끼를 갖춘 젊은 처녀가 적지 않다는 것이 세상의 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이 새로 꾸민 가정의 안주인은 연륜이 지긋이 쌓여 무엇보다 넉넉한 심덕이 돋보인다. 자유분방한 화가의 생활을 느긋이 지켜보아줄 그런 인덕의 인물인 것이다. 화가의 화력에서 「설악산시대」를 따질때면 이 부인도 함께 기억될 것이다.

설악산의 사계 그리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김형의 화풍은 말하자면 「추상적 구상」이다. 설악의 산과 바위와 소나무와 풀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구상이 분명하다. 하지만 세부 풍경을 과감히 생략한채 그 골간(骨幹)을 간결하게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상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청장년 시절 그가 한때 몰입했던 화풍은 「구상적 추상」이었다. 폼 아트 계통의 판화작업엔 전구, 오이 등의 모양을 선명하게 보여주면서도 텅빈 화폭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추상작업이었다. 「구상적 추상」에서 「추상적 구상」으로 화풍이 바꿔 내력에 대해 이런 육성을 들려준다. 『추상화는 대체로 몇 가지 조형의 변화로만 그림을 그리지만 구상화는 변화 무방한 자연을 그리니 변화의 소지가 많다. 문제는 추상과 구상의 묘미를 접합하는 일이다.』

김형의 설악 풍경 그림은 미술의 다양한 전통이 복합되어 나타난 이른바 잡종강세(籍種强勢)적 그림이다. 과거의 미덕이 오늘의 새로운 의미로 탄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나무 그림은, 이인상(李燐祥, 1710-1760)의 소나무 그림을 좋아한다는 그의 말처럼, 조선시대의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전통을 잘 재현하고 있다. 설악의 설경을 배경으로 독절하게 서 있는 고송(古松)은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를 연상시킨다. 「날이 차진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 잣나무가 제일 늦게 낙엽지는 나무임을 알겠다」는 공자 말씀을 화제(畵題로 적었던 추사처럼, 늘 푸른 소나무의 미덕을 통해 긴 좌절 끝에 늦게사 자신의 화풍을 제대로 세웠다는 김형의 의욕이 그의 그림에 비치는 듯싶다.

김형의 초화(草花)그림은 화려한 색상이며 자유분방함이 우리 민화나 조각보의 그림 수(練) 전통을 연상시킨다. 풀벌레, 산새도 함께 어우러져 현란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김형의 초화그림은 전혀 어지럽지 않고 오히려 질서정연하기만 하다. 그의 그림을 눈으로 잘 익히면 산야에 마구 피어난 들풀에서도 각별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든다.

설악산은 돌산이다. 그래서 김형의 산그림에는 돌덩어리들이 강열하게 노출되어 있다. 돌산의 당당하고 분명한 덩어리 모습을 각(角) 선으로 처리해 그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필법은 빼어난 산그림으로 꼽을만한 세잔느의 셍뜨 빅뜨와르山, 정겸재(鄭謙齋,1676-1759)의 「인왕제색(仁王霽色」, 그리고 강표암(姜豹庵,1712-1791)의 「가는골」과 「백석담(白石潭)」 (「회화」, 한국미술전집 제12권, 동화출판사, 1973 참조)이 보여주는 특장을 고루 수용한 스타일이다. 그리하여 설악 돌산의 괴량감(塊量感) 곧 듬직하고 묵직함이 뿌듯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이율배반을 체질화하고 있음이 김형의 화풍이다. 배반적 이율이 서로 지양(止場)한끝에 마침내 승화를 이룬 화풍인 것이다. 『자연은 남자, 화가는 여자. 이 대치적인 둘의 만남에서 임신의 고통이 있고 출산의 기쁨이 있다』는 피카소의 말이 감동적이었다는 김형의 술회에서도 이율의 갈등을 이겨낸 그림의 경지가 느껴진다.

그의 경지는 핏줄로부터도 흔쾌한 인정을 받았다. 당초 창작을 생각했다가 현재는 화랑경영 쪽으로 바꾸어 외국공부중인 김형의 딸이 『화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고, 아버지는 타고난 화가 체질임을 알았다』고 했다. 이 지경이면 김형에겐 더이상 잡념이 없을 터이니 그림이 앞으로 더욱 점입가경하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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