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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과 인도의 전쟁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NmLdC620 댓글 0건 조회 17회 작성일 20-01-15 04:18

본문

1.jpg 몽골과 인도의 전쟁이야기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한 이후, 13세기 몽골인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국가들이 침략을 받게 됩니다. 흔히 몽골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사례라고 볼 수 있는 베트남, 이집트는 상세한 정보가 알려져 있는데 인도의 경우는 좀 생소합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인도의 몽골군 방어전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몽골이 인도와 처음으로 접촉하게 되는 계기는 호라즘 왕국의 후계자인 잘랄웃딘의 도주로, 이를 쫓기 위해 보낸 추격병들이 최초로 인도에 진입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칭기즈칸은 후환을 없애고자 2만 명 가량의 부대를 보냈고, 이 병사들은 잘랄웃딘을 추격함과 동시에 펀자브 지역을 불태우게 됩니다. 도주하던 잘랄웃딘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인도의 통치자들과의 동맹을 호소했으나 거절당했고, 이에 잘랄웃딘은 발루치스탄을 통과하여 이란을 거쳐 조지아까지 건너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한 세력을 키웠으나 끝내 진압당하고 맙니다.


잘랄웃딘의 실패 이후, 1235년 몽골군이 카슈미르를 침공하여 다루가치를 통한 간접 지배를 했고, 인도 전역으로의 침공을 시도하게 됩니다. 이들은 오늘날의 펀자브주의 주도인 라호르까지 점령하는 데 성공합니다만 1241년 우구데이칸이 사망하자 침공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게 됩니다.


그 사이 1241년 기존에 정복되었던 카슈미르 군대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에 1251년 칸이 된 몽케칸이 휘하 장군 둘에게 진압을 명령하여 재정복하도록 합니다. 이후 반란은 순조롭게 진압되었고 라호르까지 다시 정복하는 데 성공하나, 1257년 신드의 주지사가 일 칸국의 훌레구칸에게 땅을 바치겠다고 하고 이에 훌레구칸이 신드 지방에 군대를 보내자 두 칸 사이의 신경전이 벌여지게 됩니다.


몽골과 인도의 전쟁이야기

(신드 지방의 위치)


잠시간의 신경전은 오래가지 않았고 몽케칸과 훌레구칸은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 서로의 국경선을 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경전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델리 노예 왕조의 Ghiyas ud din Balban은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세력을 길렀고 압도적인 몽골 기병에 대항하기 위해 인도 기후에 적합한 기병대를 양성하게 됩니다. 몽케칸은 먼 인도보다 가까운 남송에 국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기회를 포착한 왕은 물탄, 우치, 라호르 등의 도시를 다시 탈환하게 됩니다. 기존의 몽골 침략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수많은 부족들은 이에 델리 노예 왕조에 몸을 의탁했으며, 이후 인도 왕조들은 이들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한편 이 무렵, 남송을 멸망(1279)시킨 몽골 제국이 다시 한번 인도로 손을 뻗기 시작합니다.


몽골과 인도의 전쟁이야기

몽케칸의 사망 이후 몽골 제국은 통합되기보다 각기 지역의 지배자로서의 색채를 띠게 되고 이후 몽골의 침입은 주로 차가타이 칸국의 주도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차가타이 칸국은 꾸준히 1만~3만의 기병대로 인도를 침략했고, 이러한 침략은 몇십 년 동안 이어져 인도인들을 괴롭히게 됩니다. 몽골의 변화처럼 세월이 흘러 인도 또한 왕조가 교체되어 할지 왕조가 성립되었는데, 할지 왕조의 역사는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한 역사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인도의 수많은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몽골의 침략에 맞서싸웠던 국가입니다. 특히 왕조의 창건자인 Jalal-ud-din Khalji부터 몽골의 침입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고 그의 후계자인 Alauddin Khalji은 할지 왕조의 가장 훌륭한 명군으로서 몽골에 맞서싸워 후기 몽골의 인도 침공을 좌절시키는 데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몽골과 인도의 전쟁이야기

(Alauddin Khalji 즉위 이전의 영토)


몽골과 인도의 전쟁이야기

(Alauddin Khalji 즉위 이후의 영토)


할지 왕조의 2대왕인 Alauddin Khalji는 비록 Jalal-ud-din Khalji의 아들을 암살하고 등극했으나, 훌륭한 통치로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성공적으로 인도를 방어했습니다. 그가 막은 몽골의 침략만 해도 5번(1297년, 1298년, 1299년, 1303년, 1305년)이었으며 1306년에는 Ravi 강가에서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두며 아프가니스탄 일대까지 몽골 세력을 밀어내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또한 구자라트 왕국에 이어 란탐보레, 치토르, 말와, 시와나, 잘로레 등의 왕국을 점령하여 크게 영토를 확장시켰으며, 노예 장군 중 하나였던 Malik Kafur를 인도 남부로 보내 영향력을 남부로까지 확대시키기도 합니다.



1297-1298년의 몽골 침공


1297년 겨울 세력 확대를 꾀한 차가타이 칸국은 군대를 보내 펀자브 지역을 초토화시키며 카수르까지 진군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에 맞서 할지 왕조의 왕인 Alauddin Khalji는 장군이었던 Zafar Khan을 보내어 격퇴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몽골과 인도의 전쟁이야기

1299년의 몽골 침공

이전에 있었던 원정을 실패하자 칸은 다시 한번 델리를 정복하기 위한 군대를 보냈고, 이로 인해 벌어진 전투가 킬리 전투입니다.


몽골과 인도의 전쟁이야기

킬리 전투


기존에 있었던 두 차례의 침략이 좌절되자 차가타이칸은 아들이었던 Qutlugh Khwaja가 이끄는 군대를 보내 인도를 정복하게 합니다. 16세기 역사학자 무함마드 카심의 기록에 따르면 몽골군의 전력은 10만 명 정도이며, 델리군은 30만의 기병대와 2,700마리의 코끼리 부대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으나,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이 수치가 어느 정도 과장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전 원정과 달리 칸의 아들이 직접 참여할 정도로 자신감에 넘쳤던 몽골군은 6개월 가량 행군하며 수많은 도시들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학살하며 델리 인근에 있는 킬리에 진을 쳤고, 주변 카라반들을 압박하여 델리로 향하는 상품 가격을 급등시켜 델리 주민들의 고통을 극대화시켰습니다. 

 

이에 Alauddin Khalji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갔으나, 시간을 끌어 후속 부대가 도달하기를 원함과 동시에 원정에 지친 몽골군이 식량 부족으로 퇴각하는 것을 노렸습니다. 그러나 휘하 장군 중 하나이자 이전 몽골 침공 방어에 가장 탁월한 공을 세웠던 Zafar Khan은 왕의 허락없이 몽골군을 공격하고자 나섰고, 몽골군은 유구한 전략이었던 거짓 후퇴로 Zafar Khan을 속여 Alauddin Khalji의 야영지에서 19km 가량 떨어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Zafar Khan은 멀리 떨어진 이후에야 휘하 군대가 1000여 명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후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용감히 적군에 돌격하여 장렬히 전사하게 됩니다. Zafar Khan의 이러한 맹렬한 돌격에 의해 몽골군은 오히려 5,000여 명이 사살되었고, 지휘관이었던 Qutlugh Khwaja마저 부상을 입어 이후 몽골군이 후퇴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게 됩니다.


한편 Zafar khan의 아들이었던 Diler Khan은 몽골군에 대항하여 강력한 돌격을 펼쳤고, 후퇴하는 몽골군을 추격하는 동안 Alauddin Khalji은 델리의 중앙군을 기동시켜 몽골군을 압박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세한 전황 속에서 Zafar Khan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고, 이러한 사실은 델리 장교들 사이에 절망을 가져와 다음날 아침, 장군들은 델리에서 퇴각하여 안전한 요새에서 맞서싸울 것을 충고합니다. 그러나 왕은 Zafar Khan이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돌격했다가 사망했음을 주장하며 충고를 거부합니다. 이튿날 동안 양측은 어떠한 군사적 접전도 벌이지 않았으며 결국 3일 만에 전투가 끝나게 됩니다. 이후 몽골군은 안전하게 후퇴하는 데 성공했으나 Qutlugh Khwaja는 귀국 도중 악화된 상처로 인해 사망했으며 결국 원정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1303년의 몽골 침공


할지 왕조의 통치자인 Alauddin Khalji는 차가타이 칸국으로부터 세 차례에 걸친 침략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데 성공하여 몽골에 대한 방어뿐 아니라 동쪽과 남쪽 방향으로 확장을 꾀하기 시작합니다. 왕이 친정하여 원정을 진행하는 사이 델리 인근의 군사력이 약화되었다고 판단한 차가타이 칸국은 다시 한 번 델리를 공격하고자 군대를 보냅니다. 이에 Alauddin Khalji는 급히 회군하여 몽골군이 도착하기 한 달 전에 델리에 도착하는 데 성공하나 임박한 전투을 위한 적절한 준비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군대가 또 다른 인도 왕조를 공격하는 데 많이 손상되었기 때문인데, 이에 Alauddin Khalji은 부족한 군사력을 보충하고자 주지사들에게 델리에 보병을 파견하라는 전령을 보냅니다. 그러나 몽골군은 델리로 가는 모든 도로를 점거하여 연락망을 차단하고 도시를 봉쇄하여 다시 한 번 델리를 말라죽이고자 합니다.


불리한 전황 속에서 Alauddin Khalji은 수도 델리를 빠져나와 건설 중이었던 시리에 진영을 차립니다. 시리는 3면이 강, 정글, 오래된 요새들로 둘러쌓여 있었으며 북쪽을 제외한 나머지 방면은 방어하기 수월한 요새였습니다. Alauddin Khalji은 Siri 요새 주변에 추가적으로 도랑을 파고 목책을 세운 뒤에 선봉대로 여러 병력을 배치시켰으며, 부대 전면에는 각기 무장한 5마리의 코끼리를 배치했습니다. 


몽골과 인도의 전쟁이야기

(중세 인도군의 상병)


몽골군은 2~3번 정도 요새 주변의 선봉대를 격파하고자 시도했으나, 시리 요새로 진입하는 데 실패했고, 델리 인근을 노략질하며 두 달을 보냈지만 요새를 함락하는 것은 역부족이었습니다. 원정이 장기화될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몽골군이었고, 그동안 모아둔 약탈품과 함께 회군하게 됩니다.


이 원정은 Alauddin Khalji가 겪었던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으며, 만약 몽골군이 후퇴하지 않고 주둔했다면 수도 델리가 몽골군의 손아귀에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303년 이전에는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수많은 원정에 나섰지만, 1303년 몽골군의 원정 이후에는 신중하게 되어 이후 거의 모든 원정을 휘하 장군들에게 맡기게 됩니다. 한편 원정을 막아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낸 시리 요새는 궁전을 세워 Alauddin이 직접 거주하게 되었고 몽골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몽골군이 기존에 자주 사용했던 원정로에 구식 요새들을 강화하여 강력한 수비 태세를 갖추게 합니다.



1305년의 몽골 침공


수 차례 델리를 점령하고자 군대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몽골군은, 1305년 진군로의 강화된 요새들을 우회하고 직접 델리를 공격하기보다 히말라야 산기슭을 통과하여 갠지스 평원쪽으로 나아가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Malik Nayak가 이끄는 3만의 기병대가 추격하여 몽골군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고 암로하 전투에서 몽골군을 격파하는 데 성공합니다.


몽골과 인도의 전쟁이야기



1306년의 몽골 침공


수 차례에 걸친 원정 실패에도 차가타이칸은 포기하지 않고 또 한 번 인도에 군대를 보냅니다. 이번에도 몽골군은 이전 원정에도 진군하는 데 성공했던 라비강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하나, Malik Kafur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격파되어 수많은 몽골군이 포로로 잡혀 노예로 팔리고 다시는 인도를 침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도리어 이후 할지 왕조는 차가타이 칸국을 여러 차례 습격했고,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약탈하는 등 형세가 역전되는 판국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수 차례에 걸친 몽골군의 침입은 막을 내렸으며 이후 차가타이 칸국은 급격히 세력이 축소됨으로써 다시는 인도를 침략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한편 몽골군을 격파한 할지 왕조도 몽골군에 맞서 탁월한 공을 세웠던 Malik Kafur가 Alauddin Khalji의 아들을 꼭두각시로 만들고 권력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다녔고, 결국 할지 왕조가 단명하게 되는 원흉(...)이 되고 맙니다.




출처: 네이버 부흥 카페님 창기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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